나는 생매장한다 I Bury the Living (1958)

2020.04.20 11:45

DJUNA 조회 수:1375


전 앨버트 밴드의 58년작 [나는 생매장한다]의 내용을 스티븐 킹의 [죽음의 무도]에서 처음 접했습니다. 킹은 책 중간에 줄거리로 영화 제목 맞히는 퀴즈를 냈는데, 그 중 한 편이었어요. 번역제도 [죽음의 무도]에서 가져왔습니다. 킹은 이 영화를 좋아했지만 결말을 아주 싫어했고, 영화를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스티븐 킹은 나중에 이 작품에 영향을 받은 [부고]라는 단편을 쓰기도 했어요. 단편집 [악몽을 파는 가게]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야기의 설정은 간단합니다. 주인공 로버트 크래프트는 공동묘지의 관리자 일을 맡게 됩니다. 관리 사무실엔 커다란 묘지 지도가 있어요. 시체가 묻힌 지도는 검은 핀, 팔렸지만 아직 비어있는 묘지는 하얀 핀으로 표시되어 있지요. 크래프트는 실수로 하얀 핀을 꽂아야 할 자리에 검은 핀을 꽂습니다. 그리고 그 묘지를 산 젊은 커플이 그 직후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요. 비슷한 일들이 연달아 일어나자 크래프트는 자신이 핀을 꽂아 사람을 죽이는 힘이 있다고 믿게 됩니다.

[환상특급]의 에피소드 같은 이야기지요. 평범한 남자에게 아주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그 순간부터 남자를 둘러싼 세계는 전과 완전히 다른 곳이 되어버립니다. 전형적이잖아요. 러닝타임도 딱 그 정도로 줄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완벽한 [환상특급] 에피소드가 되려면 결말도 바꾸어야 하겠지만요. 하지만 지금의 러닝타임도 나쁘지는 않아요.

어느 기준으로 보더라도 좋은 이야기입니다. 어처구니 없는 설정이지만 갑자기 사람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게 된 남자의 혼란을 정교하고 절실하게 그려내고 있지요. 단지 [데스노트]의 시대를 살고 있는 관객들은 크래프트의 행동이 좀 갑갑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크래프트는 자신의 힘을 휘두를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니까요. 심지어 경찰까지 불러요. 요새 장르 주인공은 상상할 수 없는 행동이지요. 전 그게 오히려 신선하고 좋아보입니다만.

영화의 절정은 크래프트가 발상을 전환해, 묘지 지도의 검은 핀을 뽑아내고 하얀 핀을 꽂는 순간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정말 어디로든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를 이치에 맞게 설명하는 길을 택해요. 문제는 그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그 설명은 파탄에 빠지고 스티븐 킹의 표현을 빌린다면 '커다란 똥 무더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전 그 때문에 오히려 더 꿈결 같은 이야기로 해석될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어처구니 없는 설명만큼 초현실적인 것은 없거든요. (20/04/20)

★★★

기타등등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https://archive.org/details/IBuryTheLiving1958


감독: Albert Band, 배우: Richard Boone, Theodore Bikel, Peggy Maurer, Howard Smith, Herbert Anderson, Robert Osterloh

IMDb https://www.imdb.com/title/tt005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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