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인 (2011)

2011.09.19 23:50

DJUNA 조회 수:17437


[의뢰인]이 다루는 사건은 소위 '시신 없는 살인'입니다. 한철민이라는 남자가 아내살해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되었는데, 침대는 아내의 피로 절어 있지만 정작 시체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한철민은 강원도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길을 잃어 몇 시간 늦었다고 주장하지만, 검찰측에서는 밤 12시에서 새벽 1시 사이에 아내를 살해하고 시체를 유기한 뒤 새벽 5시 경에 출장에서 돌아온 것처럼 위장했다고 보고 있지요.

괴상한 사건입니다. 한철민 이외에 유력한 용의자가 없고 상황도 수상쩍긴 하지만, 모든 게 너무 빠르고 단정적이에요. 한철민에게는 분명한 동기도 없고, 시체를 포함한 물적증거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오직 정황증거뿐이죠. 그런데도 검찰측은 왜 이리 성급한 걸까요? 그리고 당시를 찍은 CCTV 파일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죠?

[의뢰인]이 가장 잘 하는 건 이런 식으로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수상쩍은 사건을 던져놓고 그냥 방치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거기에 대한 답과 따라 나오는 새로운 질문들을 계속 던지는 거죠. 관객들은 당연히 영화에 집중하면서 이들이 던지는 정보들을 꾸역꾸역 삼키게 됩니다.

단지 사건이 본격적으로 풀려가며 검찰측의 의중이 밝혀지는 후반부는 미스터리가 쌓일 때만큼 흥분되지는 않습니다. 새로운 정보들은 추리를 통해 밝혀지는 게 아니라 한동안 관객들과 주인공 변호사 강성희가 안 보이는 곳에 묻혀 있다가 순서대로 등장하는 것이거든요. 당연히 저 같은 추리소설 애독자들은 흥이 깨집니다.

다른 결함들도 보입니다. 보통 이런 '시신 없는 살인'이 소재인 경우, 시체가 어떻게 사라졌는지를 밝히는 건 중요하지 않습니까? 특히 아파트처럼 보는 눈이 많은 곳에서는요. 하지만 검찰측과 변호사측 모두 이를 밝히는 데에 별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아쉬우면서도 이상해요. 당연히 법정에서 누군가가 언급하고 건드려야 하는데 말입니다. 나중에 그 과정이 밝혀지긴 하는데, 이 역시 추리와 상관없이 그냥 제시되니 역시 싱겁고. 보기만큼 머리를 쓰는 장면이 많지 않은 영화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뢰인]은 썩 잘 돌아가는 법정영화입니다. 일단 군더더기가 없어요. 캐릭터 만들고 사연 만들고 눈물 짜내느라 우왕좌왕하는 대신 첫 장면부터 본론에 들어가 전력질주하지요. 그동안 변호사, 검사, 용의자, 브로커, 형사, 사무장, 기타 등등 인물들은 모두 사건과 관련된 자기 일을 필사적으로 열심히 합니다. 중간중간에 저지르는 실수들과 계산착오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제대로 된 프로처럼 보입니다. 전체적인 그림은 비교적 이치에 맞으며, 괴상한 반전을 만들기 위해 무리하지도 않습니다. 형사소송법의 기본 이념과 관련된 법철학적 접근법은 명쾌하며 가치있습니다. 영화의 목표가 미드스러운 전문직 영화를 만드는 것이었다면 성공인 것 같습니다. 단지 이것이 얼마나 '한국식 법정영화'에 가까운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11/09/19)

★★★

기타등등
전 여전히 전문가들, 특히 법조인들이 나오는 한국영화들에 편견이 있습니다. 배우들이 아무리 노련하게 연기를 해도 머릿속으로는 받아들일 수가 없단 말이죠. [의뢰인]을 볼 때는 걱정했던 것보다는 덜했는데, 그래도 조금씩 손발이 오그라들더란 말입니다. 좋은 작품들이 쌓이면 저도 나아지겠죠.


감독: 손영성, 출연: 하정우, 박희순, 장혁, 성동일, 김성령, 정원중, 유다인, 박혁권, 다른 제목: The Client

IMDbhttp://www.imdb.com/title/tt2072962/
Naver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5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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