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레이븐 The Raven (2012)

2012.06.26 23:22

DJUNA 조회 수:13857


1849년 10월 3일, 조셉 W. 워커라는 사람이 정신을 놓고 볼티모어의 거리를 방황하는 시인 에드가 앨런 포를 발견해 병원으로 데려갔습니다. 입고 있던 옷은 다른 사람의 것이었고, 정신 나간 상태에서 계속 레이놀즈라는 이름을 반복해서 불렀는데, 아무도 그 레이놀즈라는 사람이 누군지 몰랐답니다. 결국 포는 10월 7일에 죽었고, 죽기 며칠 동안 그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포의 사인과 함께 끝까지 미스터리로 남았습니다.

이 사건 뒤에 정말 신비스러운 무언가가 있을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요. 레이놀즈는 누구든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정체를 모른다고 해서 그가 꼭 중요한 사람일 필요는 없지요. 포의 사인이야... 어차피 그는 몸을 막 굴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마흔 살까지 버틴 게 용하죠.

그래도 제임스 맥티그의 [더 레이븐]은 이 미스터리를 이용해 이야기를 꾸며보려고 합니다. 처음 시도는 아니에요. 이전에도 포의 죽음과 관련된 미스터리를 소재로 많은 작품들이 나왔지요. 그 중 [더 레이븐]보다 그럴싸한 내용의 영화로 [The Death of Poe]라는 작품이 있는데, 이 영화에서는 포를 cooping이라는 강제 투표의 희생자로 그리고 있다고 합니다.

[더 레이븐]의 이야기는 더 거창합니다. 포가 죽기 전 볼티모어엔 연쇄살인마가 설치고 다니는데, 그 살인수법이 모두 포의 소설에 나오는 살인장면을 흉내낸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아낸 볼티모어 경찰의 필즈 형사는 포를 수사에 참여시키는데, 그 살인범은 포가 사랑하는 에밀리 해밀튼이라는 여성을 납치해버립니다.

이 이야기를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죠. 정말 이런 연쇄살인이 일어났다면 지금까지 기록에 남지 않을 리가 없잖아요. 포가 죽기 전 상황들이 여기저기 던져지긴 합니다만, 영화는 관객들에게 사실처럼 보이는 이야기를 던질 생각은 없습니다. 그 때문에 드디어 레이놀즈라는 이름이 등장했을 때, 관객들은 그냥 그러려니,하고 반응할 뿐입니다. 허구인 게 분명하니 처음부터 신비스러움은 없죠.

포의 단편들에서 영감을 얻은 살인들이 등장한다니, 이것은 사악한 문학비평일 수도 있습니다. 적절하게 발전시키면 재미있겠죠. 하지만 정작 살인사건들은 포의 이야기를 흉내내는 것 이상은 하지 못해요. 영화의 스토리는 포의 작품들보다는 데이빗 핀처의 [세븐]을 닮았습니다. 다시 말해 전형적인 90년대식 연쇄살인마 영화라는 거죠. 탐정으로 포가 등장하는 시대극일 뿐이지.

이 익숙한 연쇄살인마 이야기 안에서 에드가 앨런 포의 캐릭터는 길을 잃습니다. 존 큐삭은 최선을 다하지만, 이 영화의 큐삭은 실제 포의 흐릿한 캐리커쳐일 뿐이고, 영화 중반부터는 그것도 못하죠. [미드나잇 인 파리]와 같은 코미디라면, 헤밍웨이가 헤밍웨이 책에 나올 법한 이야기를 하는 밀랍인형 같은 사람으로 나와도 다들 재미있어하며 좋아하겠지만, [더 레이븐]처럼 포를 단독 주연으로 놓는 영화에서는 이보다 더 깊이 있는 묘사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차라리 포를 주연에서 빼고 루크 에반스가 연기하는 필즈 형사를 주인공으로 놓는 게 어땠을까 생각해봅니다. 홍보용으로는 나쁘죠. 포가 조금밖에 안 나오는 포 영화가 될 테니까. 하지만 이렇게 했다면 보다 적극적인 해석도 가능해졌을 거고 결말도 지금처럼 용두사미는 아니었겠죠. (12/06/26) 

★★

기타등등
영화의 몇몇 부분은 상당히 중요한 전기적 사실을 작정하고 왜곡하고 있죠. 예를 들어, 그리스올드 캐릭터의 활용과 같은 것 말입니다. 

감독: James McTeigue, 출연: John Cusack, Luke Evans, Alice Eve, Brendan Gleeson, Kevin McNally, Oliver Jackson-Cohen, Jimmy Yuill, Sam Hazeldine

IMDb http://www.imdb.com/title/tt1486192/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82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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