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2016)

2016.05.14 13:34

DJUNA 조회 수:40239


[곡성]은... 그러니까 참 '한국영화'잖아요. 지난 10여년 동안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한국영화의 특징을 거의 모두 갖고 있는 영화입니다. 상업적인 장르영화이면서 감독의 개성이 강하고 창피함 없이 마구 질주하는 난폭한 영화이며 많이 아재스럽지요.

이는 나홍진의 두 전작에도 통하는 설명인데, 단지 [곡성]은 조금 다른 길을 택하고 있습니다. [추격자]와 [황해]는 모호함 없이 선명한 영화였지요. 하지만 [곡성]은 의도적인 애매모호함이 이야기 자체인 영화입니다.

시골마을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연쇄 살인사건 이야기입니다. 범인들은 모두 현장에서 잡혔고 이들은 모두 야생버섯의 부작용 때문에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일가족을 살해한 것으로 결론나죠.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이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런 과학적 설명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 같죠. 가장 의심이 가는 건 얼마 전부터 산기슭 오두막에서 머물고 있는 일본인입니다.

영화는 마을 경찰인 종구의 눈을 통해 이 소동을 그리고 있는데요. 그는 좋은 경찰도 아니고 객관적인 관찰자도 아닙니다. 마을 사람들을 감염시킨 공포엔 자기가 가장 먼저 말려들었죠. 딸인 효진이 이상한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자마자 완전히 이성을 잃었고요. 중간부터 그는 경찰일도 하지 않아요. 그가 법과 과학 대신 찾는 건 무속신앙과 종교입니다.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은 초자연현상일까요? 영화는 여기에 대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어떤 초자연적인 음침한 존재들이 마을 사람들을 제물로 삼아 무언가 끔찍한 일을 꾸미고 있을 수도 있지만 이 모든 것은 그냥 우연이거나 사고일 수도 있는 거죠. 종구와 주변 사람들이 온갖 이상하고 끔찍한 일들을 겪긴 합니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잖아요. 그들은 객관적인 관찰자가 못됩니다. [곡성]의 세계는 답이 없고 어떤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모호한 단서들만 있는 곳입니다.

이들이 비이성의 늪에 빠지는 과정은 보편적이면서도 한국적입니다. 무속신앙, 한국식 기독교, 외국인 혐오, 기타 폭력적인 카오스에 빠지는 한국 사람들의 심리가 과장되었으면서도 상당히 정확하게 그려진 영화죠. 이 영화의 특별한 재미 상당 부분은 이 해석과정의 묘사에 있습니다. 특히 이런 것들이 기독교와 결합되는 부분이 그래요. 여기엔 거의 악랄하다고 할 수 있는 종교적 유머가 들어있죠.

그렇다고 영화가 이들을 냉소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냉소는 나홍진의 장기도 아니고요. 종구와 마을 사람들의 추락은 천박하기 그지 없으면서도 거의 장엄하게 그려집니다. 이들을 천천히 압박하는 공포도 특별히 자극적인 묘사 없이 강렬하고요. 종구의 한심함을 비난하긴 쉽지만 그의 절실함을 무시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이 잔인한 이야기에는 부정할 수 없는 연민이 깔려있습니다. 그리고 설마 의미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우주 속에서 발버둥치다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게 이들만의 일일까요. (16/05/14)

★★★☆

기타등등
사운드 문제인 건지, 종종 대사를 못 알아듣겠더군요.


감독: 나홍진, 배우: 곽도원, 황정민, 천우희, 김환희, 장소연, Kunimura Jun, 다른 제목: The Wailing

IMDb http://www.imdb.com/title/tt5215952/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2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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