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2015)

2015.06.13 17:42

DJUNA 조회 수:16886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의 도입부는 지금까지 한국에서 나온 '소녀' 중심 호러물 중 가장 전형적입니다. 병약하고 수줍은 소녀가 자가용 뒷좌석에 앉아 맥없이 창밖 풍경을 바라보고 있어요. 잠시 뒤에 도착한 곳은 숲 속 한가운데에 있는 낡고 커다란 건물입니다. 그러니까 기숙여학교물 도입부의 업계 표준인 것입니다.

영화의 시대배경은 1938년. 무대는 이름 없는 요양학교. 이런 전형적인 도입부가 당연시되는 것도 이 영화가 기본적으로 허구의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재료가 될 법한 곳이 존재했을 수는 있지만 우리가 여기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은 비슷한 소재를 다룬 예술작품들밖에 없죠. 전형성에 충실하는 것은 이 세계의 리얼리즘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물론 유일한 길은 아니겠지요.

영화 전반부에서 주인공 주란은 거의 학교 시험을 치르듯 장르의 공식들을 하나씩 거칩니다. 친절하고 싹싹하지만 속을 알 수 없는 교장, 냉정하고 가차없는 교사들, 적대적인 학생들 그리고 그래도 옆에서 친구가 되어주는 아이 한 명. 학교에서는 수상쩍은 일들이 벌어지고 아이들이 이유없이 한 명씩 사라집니다.

하지만 영화는 의외로 장르를 보다 융통성 있게 다룹니다. 여전히 호러예요. 이런 상황이 호러가 아니면 뭐가 호러란 말입니까. 영화적으로 순수하게 호러를 의도하는 장면도 많고요. 하지만 이해영은 중간에 이 익숙한 전형성을 파괴해버립니다. 종종 수상쩍긴 하지만 그래도 익숙한 아시아 귀신 영화처럼 보이던 영화가 엉뚱한 쪽으로 방향을 확 바꾸는 거죠. 그리고 그 방향의 끝에는 인근에 있는 다른 장르가 있습니다.

이러니 우리가 '웰메이드 호러'에서 기대하는 일관성은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반부에서 쌓은 장르적 진지함이랄까, 그런 게 확 날아가버리거든요. 여전히 우린 끔찍한 상황에 처한 주인공에게 몰입합니다. 하지만 장르 전환 이후로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는 부분이 많이 나와요. 그렇다고 이게 영화의 단점이냐. 그건 또 아닙니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아귀가 맞지 않는 재료들을 가지고 의도적인 불균질함을 연출하는 작품이에요. [장화, 홍련], [여고괴담] 시리즈, [기담]과 같은 이전 작품들의 레퍼런스가 노골적으로 보이는 영화이기 때문에 이 태도는 생산적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구경거리를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누가 박보영이... (이하생략.)

배우들 중 가장 자신의 역할을 즐기고 있는 배우는 엄지원입니다. 이 배우가 연기하는 교장은 동기도 간단하고 캐릭터도 얇지만 배우가 가차없이 다루면서 신나게 연기를 즐길 수 있는 캐릭터죠. 주인공 주란 역의 박보영은 초반에 지나치게 노력하는 구석이 보이지만 (그렇게 병약해보이는 배우는 아니니까요) 곧 영화를 주도합니다. 이 영화의 발견은 주란의 친구 연덕을 연기한 박소담입니다. 본 작품들이 꽤 되는데 왜 지금에야 눈에 들어왔는지 모르겠군요. (15/06/13)

★★★

기타등등
일본어 비중이 높습니다. 시대배경을 생각해보면 당연한데, 원래 각본에서보다 더 늘어난 모양이에요. 제 의견을 말한다면 배우가 음성학적으로 따라할 수밖에 없는 대사는 최소화하는 게 좋다는 것이죠. 감독이 그 언어를 모른다면 더욱 그렇고. 물론 저도 일본어를 모르기 때문에 그 대사들이 정말 어땠는지는 모르겠어요.


감독: 이해영, 배우: 박보영, 엄지원, 박소담, 공예지, 주보비, 심희섭, 박성연, 고원희, 다른 제목: The Silenced

IMDb http://www.imdb.com/title/tt4708348/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1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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