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좀비만화 (2014)

2014.05.19 01:55

DJUNA 조회 수:9224


[신촌좀비만화]라니, 신촌에서 좀비가 나오는 이야기를 다룬 만화영화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구성하는 세 단어는 내용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아요. 류승완, 한지승, 김태용이 만든 세 편의 3D 단편영화를 모은 옴니버스 영화인데, 신촌, 좀비, 만화는 그 영화의 배경이거나 소재입니다.

류승완의 [유령]은 실화를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2012년에 일어난 서울 신촌 대학생 피살사건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령카페 회원들이 동료 회원 중 한 명의 남자친구를 무참하게 살해한 사건인데요. 캐릭터는 허구이고 동기나 인간 관계는 조금씩 다르지만 이야기의 기본적인 전개는 실제 살인사건을 비교적 충실하게 따르고 있습니다. 정보 제공이 지나치게 압축적이기 때문에 사건을 모르는 사람들은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 조금 애를 먹을 수도 있겠습니다. 예를 들어 이 사건에 대해 모르는 관객들은 주인공들이 가입한 카페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에 조금 애를 먹더군요. 하긴 사령카페라는 게 그렇게 흔한 곳은 아니지 않습니까.

영화는 성실하지만 의도가 흐릿합니다. 이들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해하고 그 수준에서 설명하려 하긴 하지만 깊이 가지는 못하죠. 그럴 생각도 없어보이고요. 영화의 관점은 [동물의 왕국]과 비슷합니다. 이 무섭고 징그러운 동물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하고 살아가는지를 인간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태도는 "요새 애덜이 겁이 없잖여? 나도 제일로 무서운 게 애덜인데"라던 [짝패] 주인공들의 관점과도 크게 다르지도 않지요. 이런 스토리텔링에 인간적인 면을 넣어주는 건 류승완의 연출이나 김태용의 각본이 아니라 주인공 승호를 연기한 이다윗의 연기와 이미지인 것 같습니다. 물론 전 그 '인간적인 면'이 실제 사건에 관여한 아이들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영화의 3D 효과는 대부분 여기저기 떠오르는 문자 메시지의 묘사에 활용됩니다. 종종 주인공이 숨어 있는 좁은 공간의 폐소성을 그리는 데에 사용되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 외의 장면에서는 특별히 눈에 뜨이지는 않습니다.

한지승의 [너를 봤어]는 근미래를 무대로 한 좀비 영화입니다. 좀비병으로 나라가 쑥밭이 되었지만 치료제가 개발되어 난장판은 일단 멎었죠. 그 뒤로 그 세계는 정상인과 좀비 출신 감염자들의 계급으로 나뉘게 됩니다. 좀비 출신들은 기억을 지우는 약을 매일 먹으면서 노예처럼 살아가는데, 주인공 여울은 그들을 부려먹는 공장의 작업반장입니다. 그런 그를 예쁘장한 좀비 출신 시와가 따라다니는데, 아무래도 여울과 시와는 좀비병이 터지기 전에 알고 지냈던 사이 같습니다.

세 편 중 가장 약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장르적 성격이 분명한 영화라 아쉽군요.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쉽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장르에 대한 큰 애정이나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필요한 것들만 챙겨서 엮다보니 클리셰 범벅이 되지요. 그것들을 하나로 엮어주는 신파는 너무 얄팍하고요.

세 영화들 중 3D 효과가 가장 떨어지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기억나는 장면들을 거의 떠올릴 수가 없군요.

[신촌좀비만화]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은 마지막에 나오는 김태용의 [피크닉]입니다. 옷수선 하는 엄마, 자폐증을 앓고 있는 남동생과 함께 사는 소녀 이야기예요. 어렵게 빌려온 만화책을 동생이 엉망으로 만들자, 소녀는 동생을 멀리 있는 절에 버리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집을 떠나 절로 간 두 사람에게 아주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세 편 중 장르 정체성이 가장 약한 작품입니다. 하지만 가장 장르를 효율적으로 쓰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죠. 전반부의 사실주의와 후반부의 판타지를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며 양쪽의 빈 자리를 근사하게 채워주고 있는 것입니다. 앞의 두 영화와는 달리 '그러면 안 돼!'를 외치면서도 완벽하게 감정이입할 수 있는 주인공이 있고요. [피크닉]은 신파도, 호러도 아니지만 정서적으로 풍성하고, 아름답고, 오싹한 영화입니다. 그리고 주인공 소녀 수민을 연기한 김수안은 [콩나물]에 이어 완벽한 어린이 연기를 보여줍니다. 스테레오타이프화된 아역 연기가 아니라 진짜배기 어린이 연기요.

3D 효과도 가장 좋습니다. 세 편 중 가장 좋은 게 아니라 최근에 본 3D 영화 중 가장 뛰어나요. 초반에 나오는 수민의 일상 묘사에서도 공간감은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후반부 판타지 장면의 3D 활용은 압도적입니다. (14/05/19)

★★★

기타등등
점점 요새 한국 아이들 학교 이야기는 보기가 싫어집니다.


감독: 류승완, 한지승, 김태용, 출연: 이다윗, 손수현, 박정민, 박기웅, 이현웅, 남규리, 김수안, 박미현, 다른 제목: MAD SAD BAD

IMDb http://www.imdb.com/title/tt0831387/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2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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