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여인 Frau im Mond (1929)

2014.01.29 13:55

DJUNA 조회 수:7403


[달의 여인]은 프리츠 랑이 아내 테아 폰 하르보우의 소설을 각색해 만든 두 번째 SF 대작이자, 그의 마지막 무성영화입니다. 디스토피아 물이었던 [메트로폴리스]와는 달리 이번 영화는 근미래의 독일을 무대로 최초의 유인 달탐사를 그리고 있어요.

영화의 첫 삼분의 일은 다소 지루한 삼각관계 로맨스와 스릴러입니다. 주인공 헬리우스는 최초의 유인 달탐사선을 준비 중입니다. 하지만 그가 사랑하던 여자 프리드를 동료 빈데거가 먼저 가로채자 마음이 싱숭생숭하죠. 게다가 터너라는 미국인 악당이 달에 엄청난 양의 금이 묻혀있다고 주장하는 만펠트 교수의 연구기록을 빼돌리고는 자기를 한 팀에 넣어달라고 협박하고 있지요. 이런 이야기가 한 시간 넘게 흘러가는데, 정작 상당한 시간을 들여 소개한 터너라는 인물은 막판 몇 분을 제외하면 별 역할이 없어서 왜 넣었나 궁금할 정도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약한 부분이에요.

이 단계를 넘기면 드디어 유인 우주선 프리드가 발사됩니다. 승무원은 헬리우스, 프리드, 빈데거, 터너, 만펠트 교수 그리고 교수의 애완쥐인 조제핀입니다. 나중에 SF인 소년 구스타프가 밀항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여섯 명과 한 마리가 되지만요.

SF팬들과 과학자들이 가장 주목하는 부분은 바로 이 로켓 이야기입니다. 프리츠 랑은 이 부분을 대충 만들지 않았어요. 헤르만 오베르트를 포함한 당시 최고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았지요. 이 부분만은 당시 기술로 그릴 수 있는 최고의 하드 SF였던 겁니다. 지금 보면 투박해보이지만 우주선 가감속이 인체에 끼치는 영향, 무중력 묘사 같은 것들이 다 들어있어요. 심지어 프리드는 다단계 로켓이고 로켓 발사 전의 카운트다운 같은 건 이 영화에서 처음 쓰인 것입니다. 물론 군데군데 이상한 장면들이 보이긴 합니다. 예를 들어 지구에서 달로 날아가는 우주선에서 지구를 벽에 있는 창문으로 볼 수 있는 걸까요? 하지만 중요한 건 예측하고 이룬 것들이겠죠.

프리드가 달의 뒷면에 착륙하면서 하드 SF는 박살납니다. 도착해보니 달에는 물과 대기가 있어서 맨 몸으로 돌아다녀도 살만해요. 금도 잔뜩 있고요. 대신 우주여행 중 쌓였던 승무원들의 감정이 폭발하고 누구는 금에 미쳐서 난리가 나고... SF보다는 금광 소재의 서부극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마지막 결말은 멜로드라마의 절정이고요.

걸작이 되기엔 이야기의 결점이 많은 영화입니다. 특히 지루한 도입부와 쓸모없는 캐릭터, 과장된 심리 묘사가 걸려요. 하지만 진짜 로켓이 사람들을 우주로 쏘아올리기 전에 [달의 여인]은 수많은 과학자들에게 예지몽과 같은 영화였습니다. 베르너 폰 브라운과 그의 동료들이 사랑했던 영화임은 말할 필요도 없고요. 이 영화에서 현실과 허구가 얼마나 절묘하게 겹쳤냐면, 한참 미사일을 개발하던 시절에 나치가 보안을 목적으로 프리드의 모형과 설계도를 파괴했을 정도지요. (14/01/29)

★★★

기타등등
제가 본 키노 DVD는 162분짜리입니다. 200분짜리 복원판이 있다고 들었는데, 어디에 이야기가 더 붙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터너는 미국인이지만 외모가 수상쩍을 정도로 히틀러스러워요. 콧수염 없는 히틀러.


감독: Fritz Lang, 출연: Klaus Pohl, Willy Fritsch, Gustav von Wangenheim, Gerda Maurus, Gustl Gstettenbaur, Fritz Rasp, Tilla Durieux, 다른 제목: Woman in the Moon

IMDb http://www.imdb.com/title/tt0019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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