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째 매미 Yôkame no semi (2011)

2013.05.27 22:02

DJUNA 조회 수:10444


[8일째 매미]의 원작은 카쿠타 미츠요의 동명소설. 이 작품은 비슷한 시기에 6부작 텔레비전 시리즈로도 각색된 적이 있다고 합니다만, 제가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어제 여성영화제에서 본 영화 뿐입니다.

유괴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키와코는 유부남과 눈이 맞아 임신까지 했지만 남자의 요구로 낙태했다가 불임이 되고 맙니다. 이런 이야기가 늘 그렇듯 남자는 임신한 아내에게 돌아가죠. 그 잘난 아기의 얼굴이나 보자고 몰래 남자의 집에 잠입한 키와코는 그만 충동적으로 아기를 납치해버립니다.

이 기본적인 이야기는 영화 초반에 모두 제시됩니다. 키와코는 4년 가까운 세월 동안 그 아기와 숨어살다가 결국 체포되어 감옥에 가요. 하지만 아기의 부모에게 고맙다는 말만 할 뿐 죽어도 사과는 안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요새 인터넷 뉴스에 실렸다면 댓글란이 어땠을지 상상해보시길.

17년이 흘러, 그 아기 에리나는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부모와 사이는 엉망이고, 오래 전부터 혼자 독립해서 살아가고 있죠. 그러던 그녀에게 치구사라는 프리랜서 기자가 나타나서 인터뷰를 제안합니다. 에리나는 처음엔 거절하지만 키와코처럼 유부남과 연애하다가 덜컥 임신하게 된 뒤로는 치구사와 함께 지금까지 잊어버리고 있었던 과거를 찾는 여정에 나섭니다.

검색을 해 봤는데, 소설과 영화는 구조가 조금 다른 모양입니다. 소설이 전반부에서 키와코의 이야기를 다루고 후반부에서 에리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면 영화는 이 둘의 이야기를 번갈아가며 보여주고 있어요. 아마 효과의 차이도 있겠지요. 원작처럼 이야기를 짠다면 일단 미스터리가 없어지지 않습니까.

영화는 유괴범 키와코에 전적으로 감정이입한 채 진행됩니다. 그 납치행위가 옳다고 이야기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영화는 키와코가 어쩌다가 그런 일을 저지르게 되었고 그 뒤 어떻게 자신이 납치한 아이와 사랑에 빠졌는지를 엄청나게 설득력 있게 그립니다. 관객들은 키와코가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그렇다고 비난한 생각도 들지 않습니다. 무심하게 주인공의 심리를 따라가면서 관객들까지 심각한 범죄의 공범자로 만들어버리는 영화죠. 여기에 나가사쿠 히로미의 절절한 연기가 더해지면 그냥 울컥하게 됩니다.

오로지 여자들에게만 집중하는 영화입니다. 여기서 남자들의 역할은 여자들에게 임신과 낙태라는 골칫거리를 제공하고 모른 척하는 것으로 끝나죠. 의미있는 관계는 거의 전적으로 여자들간의 것입니다. 가끔 그 관계는 키와코가 숨어들어간 여자들만의 쉼터인 천사들의 집처럼 괴상해지기도 합니다. 치구사는 지나치게 쉽게 만들어진 캐릭터처럼 보이고요. 이 부분에서는 영화가 과연 진지하긴 한 것인지 의심이 가기도 해요. 하지만 일단 발동이 걸리고 관계가 형성되면 의미있는 무언가가 만들어집니다.

2시간 반의 러닝타임은 좀 긴 편이고 드라마의 일본식 해법이나 감상주의가 걸리기는 하지만, [8일째 매미]는 쉽게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가진 멜로드라마입니다. 나가사쿠 히로미가 가장 인상적이긴 하지만 전체적인 연기 앙상블도 뛰어나고요. 정서적 힘이 강하기도 하지만,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이고 전에는 별로 의심해본 적이 없는 대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13/05/27)

★★★☆

기타등등
왜 이런 종류의 일본 영화들은 끝에 신파조 노래를 틀어서 분위기를 망치고 주제를 단순화시킬까요?

감독: Izuru Narushima, 배우: Hiromi Nagasaku, Mao Inoue, Eiko Koike, Konomi Watanabe, Yôko Moriguchi, Tetsushi Tanaka, Jun Fubuki, Gekidan Hitori, 다른 제목: Rebirth, The Eighth-Day Cicada

IMDb http://www.imdb.com/title/tt1727825/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85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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