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H/S (2012)

2012.08.01 08:41

DJUNA 조회 수:10577


[V/H/S]는 여섯 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옴니버스 호러입니다. 이 영화의 장치는 전편이 구식 VHS 테이프에 녹화된 영상이라는 것입니다. 이 정도면 8,90년대를 무대로 한 레트로 유행의 영화가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닙니다. 마지막 에피소드를 제외하면 모두 현대 배경의 디지털 동영상이거든요. 이렇다면 굳이 VHS 테이프를 끌어올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하드 디스크보다는 VHS가 영화 소재로 더 그럴듯하죠. 적당히 향수도 자극하고 영화에 필요한 단선적 구성을 제공해주기도 하고요.

애덤 윙가드가 감독한 첫 번째 단편 [Tape 56]은 이 영화에 액자를 제공해줍니다. 길가는 여자들의 옷을 벗기고 가슴을 찍어 파는 따위의 짓을 하며 먹고 사는 삼류 범죄자들에게 버려진 집에 들어가 VHS 테이프를 하나 가져오라는 주문이 떨어집니다. 집에 들어가보니 안에는 텔레비전 앞에서 죽은 남자의 시체가 있고 여기저기에 VHS 테이프들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각각의 테이프들이 이 영화에 나오는 나머지 단편들인 겁니다.

저에게 이 에피소드는 좀 불쾌합니다. 일단 아무리 악역으로 설정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전 이 주인공들이 하는 짓을 앉아 구경할 생각이 별로 들지 않더군요. 특히 이들이 카메라로 저지르는 성추행은요. 이 장면은 엔드 크레딧에서도 반복되던데, 도대체 제가 왜 이런 걸 다시 봐야 하는지 모르겠고.

에피소드도 좀 길고 장황한 편입니다. 모두 액자임을 알고 있고 본 에피소드로 들어가길 기다리고 있는데, 분위기를 잡고 상황을 설명하는 데에 지나치게 시간을 들이고 있지요. 게다가 옴니버스 영화의 형식에 맞추다보니 설정이 조금 괴상하기도 해요.

다음 에피소드는 데이빗 브루크너가 감독한 [Amateur Night]입니다. 세 명의 남자들이 클럽에 들어가 같이 놀 여자들을 데리고 모텔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들 중 한 명이 카메라가 장착된 스파이 안경을 끼고 있지요. 영화 전체는 그 안경 안의 카메라가 녹화한 영상입니다.

영화의 이야기는 단순합니다. 이들이 낚은 여자들 중 한 명이 보기와는 전혀 다른 존재였던 거죠. 아니, 보기와 정확히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척 봐도 이 여자는 인간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보이니까요. 그 뒤로 이어지는 섹스와 살인은 전통적인 호러 영화의 흐름을 따릅니다.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효과적입니다. 스파이 카메라의 산만한 화면 속에서도 괴물의 존재는 선명하고, 거의 고골리의 [비이]를 연상시키는 고풍스러운 전개와 과장은 관객들의 집단 무의식을 자극합니다. 그리고 괴물 역 배우의 캐스팅과 분장이 참 좋아요. 한나 피어먼이라는 이름인 모양인데, 앞으로 이 장르에서 다시 보길 바랍니다.

다음 에피소드는 타이 웨스트가 감독한 [Second Honeymoon]입니다. 막 신혼여행을 떠난 커플이 여행을 디지털 캠코더로 찍는데, 모텔 밖에서 이상한 여자 한 명이 그들을 맴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정체불명의 인물이 잠들어 있는 커플의 방으로 들어옵니다.

영화는 호러보다는 익숙한 반전이 있는 추리단편에 가깝습니다. 전 이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 좀 실망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아마 그건 결말이 지나치게 친숙했기 때문이었겠죠.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거의 끝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정체불명의 여자가 만들어내는 담담한 불길함은 괜찮은 편이었고, 첫 번째 침입장면의 효과 같은 건 썩 좋았던 것 같습니다.

글렌 맥쿼드가 감독한 [Tuesday, the 17th]은 [13일의 금요일]의 패러디입니다. 캠코더를 든 네 명의 젊은이들이 숲 속 호수로 놀러가는데(미쳤군요), 미치광이 살인마가 이들을 한 명씩 무참하게 살해한다는 내용이지요. 단지 이 젊은이들 중 한 명에게 비밀이 있고, 살인마는 카메라에 잘 잡히지 않는 초자연적인 존재입니다.

스토리의 아이디어는 재미있는 편입니다. 생각해보니 이 영화에서 가장 고어 표현이 노골적인 영화이기도 하군요. 하지만 캐릭터들이 불쾌하고 행동에 믿음이 안 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전 별로 애정이 안 가더군요. 80년대 슬래셔 영화 팬들이라면 저보다 더 좋아할 수도 있을 겁니다.

조 스완버그의 [The Sick Thing That Happened to Emily When She Was Younger]는 매체 활용의 창의성이 눈에 뜨입니다. 영화 전체가 두 젊은이들의 화상통화로 구성되어 있어요. 여자는 남자에게 자기 아파트가 귀신에 들려 있고 그 귀신이 자기 팔에 뭔가를 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남자에게 그것을 화상통화로 보여주려 하지요. 주인공에게는 보이지 않는 영역을 화상통화를 통해서 상대방은 볼 수 있는 상황을 생각해보세요. 그것 이외에도 다양한 시도들이 있습니다.

단지 영화는 지나치게 짜임새가 완벽합니다. 심지어 결말을 설명하는 에필로그까지 깔끔하게 붙어 있지요. 이런 식의 구성은 사실인 척 하는 파운드 푸티지 장르와는 별로 어울리지가 않아요. 그냥 현대판 [환상특급]인 거죠.

마지막 단편인 라디오 사일런스의 [10/31/98]은 말 그대로 98년 할로윈의 기록입니다. 한무리의 남자들이 캠코더를 들고 파티가 열린다는 버려진 집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 집 안에는 기독교 광신자들이 모여서 성서를 중얼거리며 여자 한 명을 죽이려 하고 있더란 말입니다. 남자들은 여자를 구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집이 깨어나고 사방에서 귀신들이 튀어나옵니다.

특수효과가 좀 과하게 쓰인 작품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 옴니버스 영화에서 가장 신나는 에피소드이기도 해요. 파운드 푸티지 장르의 순수성을 지키면서도 이야기의 구조도 좋은 편입니다. 귀신의 집을 통하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신나게 질주하는 기분입니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좋은 기분으로 극장을 나선 영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별로라고 생각했던 에피소드들도 나름 장점이 있었고, 새로운 시도들도 곳곳에 보였으며, 좋다고 생각했던 에피소드들은 여전히 썩 괜찮게 기억됩니다. 여전히 모든 에피소드들이 조금씩 길게 느껴지고, 액자 에피소드는 맘에 안 들고, 결말은 허전하며, 모든 게 조금씩 허세 같지만요. (12/08/01) 

★★★

기타등등
옛날에는 VHS 테이프를 정말 미친듯이 사들이며 녹화를 했었습니다. 그것들 중 다시 본 건 별로 없어요. 그냥 녹화하는 것으로 만족했죠. 마지막으로 VHS 비디오를 본 게 언제더라? 전에 텔레비전 판 [우먼 인 블랙]을 보려다가 제 홈시어터의 음향이 거기에 맞추어져 있지 않다는 걸 알아차리고 귀찮아서 포기하긴 했었죠. 

감독: David Bruckner, Glenn McQuaid, Joe Swanberg, Ti West, Adam Wingard, Radio Silence, 출연: Calvin Reeder, Lane Hughes, Adam Wingard, Hannah Fierman, Mike Donlan, Joe Sykes, Drew Sawyer, Jas Sams, Joe Swanberg, Sophia Takal, Kate Lyn Sheil

IMDb http://www.imdb.com/title/tt2105044/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0945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