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 숲 (2009)

2010.09.14 12:08

DJUNA 조회 수:16486

 

 

[노르웨이의 숲]이라지만, 노진수의 이 피투성이 영화는 노르웨이와도, 비틀즈와도, 무라카미 하루키와도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냥 노르웨이가 좋아서 제목에 넣었고 앞으로도 여건이 된다면 계속 노르웨이가 제목에 들어가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하더군요. 전 카피 제목을 싫어하지만, 이 성의없이 대충 건들거리는 태도가 영화의 내용과 썩 잘 어울린다고 말할 수밖에 없군요.

 

그래도 양심상 숲은 나오는 영화입니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면 한국식 아담한 뒷산이지요. 영화가 시작되면 슬슬 이 숲을 채울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보스의 명령으로 시체를 묻으러 온 조직원 둘, 본드와 부탄가스를 마실 조용한 자리를 찾으러 온 고등학생 셋, 유부남과 바람 피우러 온 젊은 여자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이들 중 우리가 진지하게 감정이입하고 싶은 사람들은 없습니다. 그들이 곧 등장할 낫을 든 등산복 살인마의 잠재적 희생자로 찍혔다는 건 막을 수 없는 운명입니다.

 

피가 튀고 신체 일부가 뜯겨 나가는 장면들이 계속 나오지만, [노르웨이의 숲]은 코미디입니다.  이 영화의 코미디는 막간극이 아니라 영화의 제1 장르입니다. 연쇄살인, 시체 암매장과 같은 호러나 스릴러 재료들도 모두 코미디 재료지요. 시치미 뚝 떼고 잔인무도한 설정을 일상화시키면서 만들어내는 삼가말하기의 코미디말입니다.

 

이 코미디가 완벽하게 성공했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우선 호흡이 짧아요. 시체 암매장 코미디만 해도 처음 10여분 동안은 재미있지만 그 뒤로는 비슷비슷한 농담들이 반복되어 힘이 떨어집니다. 슬슬 다른 농담으로 넘어가야 하는데도 여전히 같은 반복이 계속되는 거죠. 꽤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와서 조합의 묘미도 있을 법 한데, 이들이 본격적으로 엇갈리는 건 러닝타임이 꽤 흐르고 난 뒤라 그 가능성을 조금 날려버린 듯한 느낌입니다. 90분 안쪽의 비교적 짧은 영화인데도, [노르웨이의 숲]의 체감시간은 기대했던 것보다 짧지 않습니다.

 

슬래셔 영화로서 영화는 예상 외로 묵직합니다. [13일의 금요일]식으로 다양한 살인무기를 과시하는 영화는 아니에요. 살인마는 오로지 낫 하나만으로 작업합니다. 하지만 그 단순무식한 우직함이 타격의 무게감을 준다고 할까요? 영화는 그의 살인행위를 특별한 영화적 수사 없이 그대로 보여주는데, 그 때문에 날 것의 끔찍함이 더 잘 살아납니다. 단조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중간중간에 넣은 변주도 그 정도면 적당하고요. 살인마의 동기가 교활할 정도로 능숙하게 토착화되어 있는 것도 좋습니다.

 

[노르웨이의 숲]은 시작부터 '그냥 한 번 놀아보자'가 목표인 B 영화입니다. 결과물을 보니 정말 신나게 놀았던 모양이고, 그 흥겨움이 영화에도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단지 약간의 독창성과 계산이 추가되었다면 관객들도 더 신나게 놀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이 영화에는 아직 쓰지 못한 가능성의 빈 자리가 보입니다. (10/09/14)



기타등등

1. 영화의 살인 대부분은 가볍게 처리되지만, 약간의 감정이입이 들어간 장면이 하나 있기는 합니다. 그 장면에서는 그러는 게 예의를 지키는 것이라 생각했던 모양이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2. 보고 있으면 [달콤 살벌한 연인]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감독: 노진수, 출연: 정경호, 박인수, 서윤, 조명연, 지현, 송현진, 박주환, 도균, 권태진, 다른 제목: Norwegian Woods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Norwegian_Woods.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50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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