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은 이라가시 다이스케의 만화책을 원작으로 한 2부작 영화의 첫 편입니다. 속편인 [겨울과 봄]은 며칠 뒤에 일본에서 개봉된다고 해요. 2부작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4부작입니다. [여름]편과 [겨울]편은 모두 자기만의 오프닝 크레디트와 엔드 크레디트를 갖고 있거든요. 같은 시리즈에 속해있는 중편영화 두 편을 묶어서 상영하는 거죠.

네 편이건 두 편이건, 그리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어차피 자잘한 에피소드들이 연결되어 하나로 이어지는 영화처럼 보이니까요. [겨울과 봄]은 안 봤지만 솔직히 그 영화를 보고 특별히 할 이야기가 생길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 영화도 보긴 하겠지만 비슷할 거 같아요.

영화의 주인공은 이치코라는 젊은 여자인데, 코모리라는 산골 마을에 삽니다. 잠시 도시에서 남자친구와 산 적은 있지만 그 짧은 시기를 제외하면 이 마을에서 거의 벗어난 적이 없지요. 어렸을 때부터 같이 살아온 엄마는 어느 날 갑자기 가출해 소식이 없고 이치코 혼자 집을 지키며 삽니다.

다들 사연이 있겠지만 깊이 다루어지지는 않습니다. 본론을 이야기할 때 슬쩍 언급될 뿐이죠. 이 영화에서 주인공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건 이들의 드라마가 아니라 이치코의 요리입니다. 영화는 각 요리 하나에 챕터 하나를 주고, 이치코가 그 요리를 만드는 방법을 친절하게 보여줍니다. 종류도 다양해요. 집에서 만든 빵, 우스터 소스, 누텔라(!)에서부터 산수유 잼, 식혜, 호두밥, 밤조림, 오리 요리까지. 이러는 동안 이들 사이에 프루스트의 마들... 아, 이 비유는 지겹겠다.

여기서 재미있는 건 이치코의 요리가 거의 자급자족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냥 쇼핑한 재료로 만드는 게 아니라 거의 모든 재료를 직접 밭이나 논에서 수확하고 산에서 채집합니다. 밀가루나 설탕처럼 어쩔 수 없이 사와야 하는 재료가 등장할 때는 꼭 언급을 하고요. 그러면서도 종류가 그렇게 다양한 걸 보면 조금 놀랍죠. 종종 드러나는 맥가이버스러운 창의성은 말할 것도 없고.

원작도 그럴 거라고 짐작하는데, 이 영화의 리얼리즘은 조금 어긋난 구석이 있습니다. 재료를 수확하고 요리를 만드는 과정은 정확하고 사실적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치코의 경제력이나 경제활동에 대해 거의 이야기해주지 않아요. 이 사람은 오로지 자급자족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거 같은데, 모녀가 늘 그렇게 살아오지는 않았겠죠. 다시 말해 극도로 정확한 묘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현실의 일부가 잘려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각각의 요리는 종종 생활의 일부보다는 정갈한 일본식 제의처럼 보여요. 하시모토 아이의 캐스팅도 이런 분위기에 일조하고요. 암만 봐도 이 배우는 시골 촌각시처럼 보이지는 않으니까요.

영화는 [겨울]편에서 약간의 드라마를 암시하며 클리프행어로 끝나는데 그게 그렇게 궁금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속편이 나오면 계속 볼 거 같아요. 일단 시작하면 멍하니 넋을 놓고 화면을 보게 되는 그런 영화입니다. 좋은 의미로. (15/02/09)

★★★

기타등등
원작자 역시 시골에서 자급자족한 경험이 있고 이것이 만화책에 반영된 거 같은데, 그래도 이치코와 아주 같지는 않았겠죠. 만화가와 농부는 사정이 다르니까.


감독: Junichi Mori, 배우: Ai Hashimoto, Mayu Matsuoka, Yôichi Nukumizu, Karen Kirishima, Takahiro Miura, 다른 제목: Little Forest: Summer/Autumn

IMDb http://www.imdb.com/title/tt3474600/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29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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