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 (2019)

2019.04.16 11:44

DJUNA 조회 수:13662


[페르소나]는 아이유 주연의 네 단편 영화를 모은 시리즈입니다. 옴니버스 영화라고 할 수도 있지만 넷플릭스에서는 시리즈라고 하고 있고,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모두 독자적인 엔드크레딧을 갖고 있으니 앤솔로지 시리즈라고 보는 게 맞을 거 같습니다.

조금 어리둥절한 기획입니다. 아이유의 연기 경력은 결코 짧다고 할 수 없지만 연기폭이 엄청나게 넓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배우보다는 가수로 더 유명하고, 지금까지 구축된 이미지도 가수로 활동하면서 쌓은 것이죠. 그러니까 이 영화들은 지금 현역으로 활동하는 감독들이 만든 일종의 아이돌 팬픽입니다.

이경미의 [러브 세트]는 이 시리즈에서 가장 위험한 게임입니다. 배두나는 아이유의 아버지 김태훈과 데이트 중인 것 같습니다. (이 영화의 캐릭터들은 모두 배우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아이유는 배두나가 아버지와 결혼하는 것이 두렵습니다. 둘은 배두나가 아버지와 결혼하지 않는 것을 걸고 내기 테니스를 합니다. 이야기 자체는 일종의 진공에서 벌어집니다. 20세기초 리비에라 휴양지를 무대로 해도 먹히는 이야기이고 캐릭터죠. 전 콜레트 소설 생각이 종종 났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이어지는 게임을 엄청나게 노골적인 섹스처럼 그립니다. 두 선수의 모든 동작과 행동이 극도로 전형적인 성적 이미지를 통과해서 전달돼요. 그리고 요새 아이유의 이미지를 에로틱하게 소비하는 건 정말 위험하죠. 하지만 영화는 끝날 무렵에 영화의 이미지를 구성하고 있는 시점을 살짝 옆으로 옮깁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봐왔던 익숙한 이미지와 이야기가 전혀 다르게 보이는 것이죠. 여전히 양날의 칼날처럼 위험하기 짝이 없지만 재미있는 에피소드입니다.

임필성의 [썩지 않고 오래]는 아이유가 연기하는 은에게 차이는 남자 이야기입니다. 은은 예쁘고 매력적이고 어립니다. 남자는 봐줄 게 전혀 없고 나이도 많습니다. 남자는 은 때문에 오래 사귄 거 같은 여자친구도 찼는데, 억울합니다. 온갖 망상이 머릿속에 돌아다닙니다. 그 중에는 자기 머리가 잘려나가는 것 같은 폭력적인 환상도 있습니다. 이 시리즈가 청소년 관람불가가 된 것도 이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 시리즈 중 가장 재미가 없는 작품입니다. 일단 사람들은 아이유를 보러 이 에피소드를 틀었을 텐데, 아이유 캐릭터의 비중이 낮습니다. 많이 나오긴 하지만 이 캐릭터는 주인공 남자의 망상에 불과하지요. 그리고 여신숭배에서 극단적인 여혐 사이를 왕복하는 남자는 굳이 20여분 동안 지켜봐야 할 이유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영화 내내 자신의 존재를 엄청나게 과대평가하지요. 찌질한 자신을 비판하는 게 엄청나게 재미있는 모양인데,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사람의 두뇌 바깥으로 나오면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 거 같습니다. 아이유 캐릭터도 더 재미있을 거고 남자도 더 낫겠죠. 덜 나올 테니까요.

전고운의 [키스가 죄]는 이 시리즈에서 가장 독립적인 영화처럼 보이고, 아이유도 가장 배우처럼 사용됩니다. 이 에피소드의 아이유 캐릭터는 이 시리즈에서 유일하게 연예인 아이유에서 분리된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한나요. 고등학생인 한나는 아빠한테 키스 마크를 들켜서 머리칼이 잘리고 집에 감금당한 친구 혜복을 찾아갑니다. 둘은 혜복 아빠에게 복수를 하려 하지만 그게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러다 사고가 터지는데, 이 사고의 내용 때문에 시리즈 데뷔가 일주일 미루어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일단 귀엽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한나도, 혜복도 맹충맹충 귀엽습니다. 이들은 모두 아이들이에요. 자신의 몸과 욕망과 감정에 대한 확신이 없고 그렇게까지 영리하지도 않은. 영화는 모든 게 서툴고 아슬아슬한 이들이 우정과 모험을 정말 사랑스럽게 그리는데, 여기엔 아이유와 혜복을 연기한 심달기의 화학반응이 한 몫을 합니다. 짧지만 효율적으로 압축된 성장영화이기도 합니다.

김종관의 [밤을 걷다]는 남자의 꿈 속에서 벌어지고 있고, 아이유가 연기하는 여자친구 지은은 얼마 전에 죽은 것 같습니다. 죽은 사람의 유령이 산 사람의 꿈 속에 들어온 것이고 아마 남자가 깨면 이 모든 것을 잊어버리겠지요. 물론 유령이 진짜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아마도 여자친구는 남자의 추억이 응결된 존재일 것입니다. 어느 쪽으로 해석해도 상관 없습니다만.

굉장히 김종관스럽게 아름다운 흑백 영화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가장 뮤직비디오에 가까운 작품일 것입니다. 구체적인 스토리보다 이미지와 음악, 사운드가 만들어내는 우울하고 서정적인 감정의 흐름이 더 중요해요. 네 편 모두 감독의 개성이 뚜렷한 작품이지만 감독의 개성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감독의 성비가 딱딱 절반씩이지요. 그리고 여자, 남자로 딱딱 성격이 갈립니다. [러브 세트]와 [키스가 죄]에서 이경미와 전고운은 아이유에게 분명한 개성과 욕망이 있는 거칠고 불완전하고 역동적인 캐릭터를 주고 다른 여자 캐릭터와 관계를 맺게 해줍니다. 하지만 [썩지 않고 오래]와 [밤을 걷다]는 아이유 캐릭터를 남자들의 주관적인 망상 또는 몽상 속에 집어넣습니다. 이렇게 칼로 자른 것처럼 나누기도 쉽지 않을 텐데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여자 연예인이나 배우를 갖고 같은 성비로 영화를 만들어도 같은 결과가 나올까요? 그렇지 않기를 바랍니다.

배우로서 아이유는 만족스럽습니다. 십대 여자아이의 부글거리는 욕망과 분노는 아주 잘 살리고 있고, [밤을 걷다]에서 보여주는 죽은 연인의 몽환적이고 성숙한 아름다움도 좋죠. [썩지 않고 오래]는... 어쩔 수가 없잖아요. 캐릭터가 없으니까. (19/04/16)

★★★

기타등등
더 나이를 먹으면 아이유는 어쩔 거냐는 비아냥을 읽었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나이를 먹고 그러는 동안 그 안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찾기 마련이죠. 심지어 끊임없이 지금의 자신이 몇 살인지 알려주고 있는 연예인 걱정을 왜 굳이...


감독: 이경미, 임필성, 전고운, 김종관, 배우: 아이유, 배두나, 심달기, 박해수, 김태훈, 이성욱, 정준원, 다른 제목: Persona

IMDb https://www.imdb.com/title/tt10027990/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80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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