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펜서 Spencer (2021)

2022.03.18 10:57

DJUNA 조회 수:3336


파블로 라라인이 20세기 유명인사를 주인공으로 한 두 번째 영화를 들고 왔습니다. 이번 작품의 주인공은 다이애나 왕세자비. 여러 모로 전작 [재키]의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와 비교될 수밖에 없는 사람인데, [스펜서]가 이 인물을 다루는 방식은 [재키]와 많이 다릅니다.

영화의 시대배경은 1991년입니다. 윈저가 사람들이 사흘간의 크리스마스 휴일을 보내기 위해 여왕의 샌드링엄 영지에 모여들어요. 수행원도 없이 혼자 차를 몰고 가던 다이애나는 중간에 길을 잃는데, 이건 대놓고 이 인물의 현재 상태를 보여주는 도구입니다. 이 사람은 길을 잃었어요. 영국 왕실이라는 거대한 덪에 갇혀서 원하지 않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지요.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건 모두가 알고, 섭식장애에 시달리고, 종종 자살 충동을 겪습니다.

우리가 익숙한 표면적인 이미지를 걷어내고 최대한 자연인에 가깝게 접근하려고 했던 [재키]와는 달리 [스펜서]는 실제 다이애나의 모습을 그려낼 생각은 없습니다. 일단 영화 자체가 허구예요. 1991년에 다이애나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샌드링엄 저택에 있었겠지만 영화에 있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죠. 앤 불린의 유령도 못 봤을 거고, 찰스가 다이애나와 카밀라에게 똑같은 진주 목걸이를 선물로 주지도 않았을 거고. 그리고 들어보니 당시는 다이애나의 섭식장애가 어느 정도 치료된 상태였다고 하더군요. 영화의 중요한 두 조연인 매기와 그레고리도 허구의 인물이고요.

이 차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스펜서]가 그리려고 하는 건 자연인 다이애나가 아니라 신화화된 다이애나의 이미지예요.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사람의 고통과 번민을 최대한 아름답고 다채롭게 그리는 게 이 영화의 목표입니다. 그러니까 좀 오페라 같아요. [안나 볼레나] 같은. 실제 인물이 겪은 고통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탐미적인 아리아의 재료인 것입니다. 잔인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만큼이나 연민과 사랑으로 가득 찬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오페라가 성공하려면 관객들이 둘 다를 느끼는 것이 중요하고요. 영화가 제공하려는 것은 정말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에 가장 가까운 카타르시스예요.

영화는 의외로 해피엔딩으로 끝이 납니다. 억압과 역경을 극복하고 자신을 찾은 주인공이 자유를 얻는다는 내용에 영화가 맞추어져 있어요. 그리고 이건 거짓말은 아니죠. 비극과 희극을 나누는 건 이야기를 어디서 끊느냐에 달려 있으니까. 하지만 이미 이 인물의 결말을 알고 있는 관객들은 이 해피엔딩에서 구조가 주는 것 이상의 특별한 감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배우의 영화입니다. 그리고 다이애나를 연기한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1.66:1의 좁은 화면에서 탈출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끊임없이 관객들의 시선을 받으며 노래를 불러야 하지요. 스튜어트의 다이애나는 제가 알고 있는 다이애나와 아주 닮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연민할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존재이고, 이미지가 아주 겹치지 않은 배우가 연기할 때 발생하는 긴장감이 영화에 매력을 더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주연 배우들, 특히 의상담당 매기 역의 샐리 호킨스와의 합이 참 좋아요. (22/03/18)

★★★☆

기타등등
캐스팅이 좋은 편이긴 한데, 잭 파딩의 캐스팅은 좀 어리둥절합니다. 배우가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윈저가 영화나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은 왜 찰스 왕세자의 못생김을 외면하는 거죠?


감독: Pablo Larraín, 배우: Kristen Stewart, Timothy Spall, Jack Farthing, Sean Harris, Sally Hawkins

IMDb https://www.imdb.com/title/tt12536294/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aver?code=207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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