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라이즈 킹덤 Moonrise Kingdom (2012)

2013.01.27 22:36

DJUNA 조회 수:16037


웨스 앤더슨이 언젠가 작정하고 제대로 된 어린이 영화를 만들어 줄 거라고 기대는 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영화 주인공들 상당수는 늘 청소년기에서 맴돌았고, 나이를 먹어도 늘 조숙한 청소년들처럼 보였죠. 하지만 그보다 더 흥미를 끌었던 건 그의 엄격하게 절제된 스타일이 동화의 이야기 형식과 잘 맞아떨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건 이야기꾼이나 주인공의 나이와는 상관 없습니다. 이야기꾼이 그 나이 또래 아이들에 대해 관심이 있느냐와도 별로 상관없고. 그의 전작인 [판타스틱 Mr. 폭스]만 봐도 그 분위기를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동화는 앤더슨에게 그냥 잘 맞는 장르예요.

[문라이즈 킹덤]은 웨스 앤더슨 스타일로 조숙하고 똑똑하고 매력적인 두 아이들의 모험담입니다. 샘은 위탁가정에서 자란 고아이고, 수지는 부모가 모두 변호사인 부유한 집안의 딸입니다. 샘은 카키 스카웃 활동 때문에 수지네 집이 있는 섬에 들어왔다가 벤자민 브리튼의 [노아의 방주]에 출연하던 수지를 보고 사랑에 빠집니다. 1년 동안 열정적인 연애편지를 주고받던 둘은 다음 해에 샘이 섬에 다시 돌아오자 같이 달아나기로 결정합니다. 하지만 섬에 갇혀 있는 한 그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섬 안의 어디인가일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는 1960년대 중반을 무대로 하고 있지만, 여기에서 어떤 현실세계의 흔적을 찾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입니다. 샘이나 수지는 모두 추상적인 존재들입니다. 주변의 아이들과 어른들, 그들간의 관계와 알력, 그들이 엮여 만들어진 이야기도 마찬가지죠. 다들 웨스 앤더슨 영화의 재료인 겁니다. 1960년대라는 배경도 아마 앤더슨 영화에 어울리는 단순명쾌함 때문에 선정되었겠죠.

영화는 현실세계보다는 문학의 세계 안에 있습니다. 성서와 셰익스피어가 가장 먼저 보입니다. 벤자민 브리튼의 [노아의 방주]는 자연스럽게 성서의 대홍수 이야기로 이어지고, 섬에서 벌어지는 두 연인들의 이야기에서는 [템페스트]를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영화는 당시 연극에서 그랬던 것처럼 내레이터를 등장시켜 관객들에게(심지어 등장인물들에게도) 필요한 정보를 주고 전지적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가죠.

감독이 이미 만들어놓은 기성품 캐릭터들이 큐브릭의 1점투시법으로 구성된 완벽한 좌우대칭의 화면 속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정확하고 냉담한 대사를 읊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영화의 로맨스와 드라마는 격렬하기 짝이 없습니다. 미니 버전 [로미오와 즐리엣]이에요. 사실성 따위에 신경쓰지 않는 영화이기 때문에 오히려 감정과 드라마의 순수성이 극대화된 것이겠죠. 

기가 막히게 예쁜 영화입니다. 파스텔조의 색깔을 더한 큐브릭스러운 화면은 그냥 완벽하고, 프랑수아즈 아르디가 양념처럼 들어간 벤자민 브리튼의 음악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효과적입니다. 그리고 주인공 꼬맹이들이 예뻐요. 특히 수지 역의 카라 헤이워드는 벌써부터 스타의 끼가 보입니다.

브루스 윌리스에서부터 틸다 스윈턴에 이르기까지,만만치 않은 스타 캐스팅을 과시하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들 중 과잉 연기를 하는 사람들은 없죠. 앤더슨의 연기지도 스타일이 이를 막고 있기도 하지만, 이들 모두가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이 누군지 정확히 알고 있고, 거기에 맞추어 정확한 조연연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13/01/27)

★★★☆

기타등등
두 주연배우들은 영화를 찍으면서 타자기의 실물을 처음 봤다는군요. 아, 이런 것도 당연해진 시대가 된 건가.

감독: Wes Anderson, 배우: Jared Gilman, Kara Hayward, Edward Norton, Frances McDormand, Bill Murray, Bruce Willis, Jason Schwartzman, Bob Balaban

IMDb http://www.imdb.com/title/tt1748122/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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