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시네마 (2012)

2012.11.03 00:21

DJUNA 조회 수:9914


[가족시네마]는 원래 보건복지부가 출산장려 캠페인을 위해 계획한 옴니버스 영화라고 합니다. 하지만 네 편이 영화 결말이 모두 어둡기 짝이 없자, 그 쪽에서는 영화 개봉을 포기해버렸다고 하더군요. 아마 그쪽에서는 70년대식 문화영화 같은 걸 기대하고 있었나 봅니다. 하여간 그래서 한동안 개봉길이 막혔었는데, 첫 번째 단편인 신수원의 [순환선]이 이번 칸 영화제에서 비평가주간 카날플뤼 상을 수상하고, 영화 전체가 신디 영화제에서 무비 콜라주 상을 수상하자 개봉길이 열렸습니다.

신수원의 [순환선]은 샐러리맨의 악몽입니다. 십대인 딸을 하나 두고 있고 아내가 늦둥이를 낳을 예정인데, 그만 남편이 회사에서 잘렸습니다. 차마 가족에게 해고 사실을 이야기하지 못한 남자는 2호선 순환선을 타고 하루 종일 빙빙 돕니다. 그러다가 아기를 안고 구걸을 하는 여자를 만나면서 주인공이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평정의 허세는 무참하게 파괴되고 맙니다.

신수원은 극도로 사실적인 이야기를 관습적으로 푸는 것 같으면서도 중간에 종종 백일몽과 악몽의 형태로 판타지를 심습니다. 하긴 2호선을 타고 같은 길을 빙빙 돌고 있으면 최면에 걸려도 이상할 게 없죠. 이 악몽들은 반복되고 증폭되면서 현실 세계의 주인공이 겪는 수모와 공포에 더 끔찍한 맛을 심어줍니다. 

물론 영화는 출산장려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갑니다. 오히려 우리가 사는 사회가 얼마나 아기를 낳기 힘든 곳인지를 보여주죠. 가장이 삐끗하면서 시스템에서 떨어져 나가면 정상적인 양육 자체가 불가능해져버리는 곳이 바로 우리가 사는 나라이니 말입니다.

홍지영의 [별 모양의 얼룩]은 99년에 일어난 씨랜드 사건을 모델로 한 하성란의 동명 단편을 각색한 작품입니다. 1년 전 수련원 화재 사고로 어린 딸을 잃은 엄마는 다른 아이들의 가족과 함께 사고현장을 찾는데, 돌아오는 길에 술주정뱅이 가게 주인으로부터 이상한 소리를 듣습니다. 사고 직전에 유치원생 한 명이 사고 현장에서 걸어나오는 것을 보았다고요.

사회성 짙은 드라마 안에 오싹한 유령 이야기를 숨겨 놓고 있는 영화입니다. 딸의 죽음을 간신히 받아들이기 시작한 엄마에게 갑자기 얼토당토 않은 희망이 찾아오는데, 이는 이성적인 설명으로는 말이 되지 않으니, 주인공의 현실은 어떤 방식으로라도 파괴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단지 이 파괴되는 현실을 꿈의 논리로 흘러가게 두기엔 현실 세계의 논리가 조금 덜컹거려 걸리긴 합니다. 하지만 주연배우 김지영의 연기가 그 빈틈의 상당 부분을 채워줍니다.

주제만 본다면 '출산장려'나 '저출산시대'와 가장 떨어져 있는 작품입니다. 여전히 워킹맘의 육아 환경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그보다는 딸을 잃은 엄마의 감정이 더 중요하죠. 하지만 이미 보건복지부 프로젝트에서 떨어져 나온 작품이니, 그게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이수연의 [E.D. 571]는 2030년의 근미래를 그린 SF입니다. 능력있는 39세의 본부장인 인아에게 갑자기 딸이라고 주장하는 12살 소녀가 나타납니다. 알고 봤더니 소녀는 인아가 천문학적인 규모의 대학 등록금에 허덕일 때 브로커에게 불법으로 팔아넘긴 난자를 통해 태어난 아이죠. 이혼한 부모 모두가 자신의 양육을 거부하자 소녀는 자신의 피보호자가 되어주지 않으면 이 사실을 회사에 폭로하겠다고 협박합니다. 

SF지만 특수효과나 세트 디자인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영화입니다. 대신 선우선과 지우의 연기로만 지탱되는 연극적인 스토리 안에서 당시 상황을 읽을 수 있는 두 사람의 대화로만 끌어가죠. 그리고 영화가 그리는 미래는 지금 한국 사람들이 겪는 현실이 극단적으로 과장된 곳입니다. 

주제만 본다면 이 옴니버스 영화에서 가장 보편적인 주제를 건드리고 있는 작품입니다. 저출산 시대의 한국사회를 캐리커처의 모습으로 그리기도 하지만, 아무런 의지나 선택 없이 엮인 부모와 아이의 관계를 차갑게 그리고 있죠. 하긴 맞는 이야기입니다. 누군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겠습니까.

김성호의 [인 굿 컴퍼니]는 임신 때문에 해고당할 위기에 처한 출판사 직원을 둘러싼 코미디입니다. 그냥 포기하고 회사를 떠나려 했던 직원은 주변 동료 직원들의 격려로 회사와 맞서 싸우기로 결정하고 동료들은 파업에 돌입합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는 동안 이들의 작은 파업은 서서히 붕괴되기 시작합니다.

한마디로 영화판 출판사옆 대나무숲입니다. 소제목을 붙인다면 '화이트 컬러들은 왜 파업에 실패하는가'. 결말이 빤히 보여서 암담한 영화이긴 한데, 그래도 코미디라서 피식피식 웃음이 나오긴 합니다. 배우들의 앙상블과 자잘한 연기들이 살아 있고 속도도 좋고요. 

주제면에서 본다면 그냥 돌직구를 던지는 영화입니다. 별다른 꾸밈 없이 한국의 워킹맘들이 얼마나 위태로운 환경 속에서 일을 하고 있는지 온갖 사례들을 총동원해서 보여주고 있지요. 심지어 중간중간에 다큐멘터리 흉내를 내면서요. 너무 많은 이야기가 응축되어 있어서 가끔 인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기능성은 상당하죠. 그 기능성이 보건복지부 사람들이 원했던 종류는 아니었겠지만. (12/11/03)

★★★

기타등등
제목이 안 좋아요. 이미 박철수의 [가족시네마]가 있으니까요. 영어 제목은 [Modern Family]인데, 이것도 이미 동명의 시트콤이 있지 않나요?

감독: 신수원, 홍지영, 이수연, 김성호, 출연: 정인기, 김지영, 선우선, 지우, 이명행, 다른 제목: Modern Family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Modern_Family.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87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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