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오브 더 위치 : 마녀호송단]의 무대는 기독교의 광기로 바보들의 지옥이 된 중세 유럽입니다. 중세를 그리는 여러 버전 중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세계죠. 십자군 원정, 흑사병, 마녀 사냥, 종교 재판. 다 있습니다. 다 있는 정도가 아니죠. 몽땅 하나의 스토리 안에 묶여 있어요.


상황은 이렇게 됩니다. 영문도 모르고 십자군 원정에 참여했던 베어만과 펠슨은 무의미한 학살에 신물이나 전쟁터를 떠납니다. 흑사병이 창궐하는 마을을 지나다가 탈영병이라는 게 들통난 그들은 흑사병을 일으켰다는 마녀를 수도원으로 호송하는 임무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과연 이 아가씨가 마녀인 게 맞습니까? 이 말도 안 되는 세상에서 그런 말을 믿을 수 있겠어요?


이야기의 도입부는 매혹적입니다. 적어도 인터넷에서 시놉시스를 읽을 때는요. 전 예고편을 보고 시놉시스를 읽은 뒤, 이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수십 가지의 가능성을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 아가씨는 마녀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 모호한 경계선을 탐구하며 중세 유럽이라는 세계를 구성하는 정신세계를 그리는 건 얼마나 신나는 일이겠습니까.


정작 영화의 각본은 그 수많은 가능성들을 다 박살내 버립니다. 가장 큰 문제는 각본가가 중세 유럽이라는 시공간과 그곳에서 끌어올 수 있는 주제에 대해 별 생각이 없는 것이죠. 깊은 생각 자체를 안 하려고 해요. 요즘 중세 소재의 영화를 보면 문화적 연속성이 끊긴 것 같아요. 요새 작가들은 혹시 중세 시대에 대한 소스를 D&D 게임에서 얻나요? 아무리 관대하게 영화를 보려해도 이 영화의 세계는 생명력이 결여되어 있어요.


결과는 심심합니다. 중간까지는 그냥 밍밍한 정도지만 후반으로 가면 민망해 죽을 지경이에요. 영화는 자기만의 생각이 없습니다. 그냥 적당한 수준에서 모두의 비위를 맞추려 하죠. 진상이 밝혀지고 악당들과 맞서 싸우는 부분에서는 거의 서커스를 보는 기분입니다. 이쪽 비위도 맞추어야 하고, 저쪽 비위도 맞추어야 하고. 하지만 위의 시놉시스를 읽어보세요. 그렇게 사이좋은 결말이 어울립니까? 그게 말이 됩니까?


도니믹 세나 역시 이 각본을 잘 살리고 있지 못합니다. 각본이 아무리 산으로 간다고 해도 영화의 중심은 여전히 서스펜스와 호러입니다. 연기지도와 연출에 섬세한 터치가 필요하죠. 하지만 세나를 이 영화를 오로지 액션물로만 만듭니다. 서서히 구축되어야 할 갈등과 분위기가 전혀 살아남지 못해요. 계단으로 수레를 밀어 올리는 느낌이랄까. 영화 내내 덜컹덜컹합니다. 특히 배우들이 고생이에요. 아무리 열심히 연기를 하면 뭐합니까. 편집이 그 흐름을 잡아주지 못하는데.


그렇다고 액션이 특별히 재미있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전 영화를 보기 얼마 전에 에롤 플린 나오는 [시 호크]를 봤는데, 그 예절 바른 구식 할리우드 액션물의 칼싸움이 [시즌 오브 더 위치 : 마녀호송단]의 난도질보다 훨씬 박진감 넘쳤습니다. 이 영화는 그냥 컴컴한 난장판이에요. 불필요하고 질도  별로인 컴퓨터 그래픽이 너무 많고 액션은 선명도가 떨어집니다. 물론 멀리 멀리 산으로 산으로 가는 각본보다야 액션이 낫지만.


배우들은 괜찮습니다. 케이지가 아무리 영화 선택을 잘 못한다고 해도 그는 여전히 좋은 배우죠. 론 펄만의 존재감은 여전하고. 그리고 마녀로 몰리는 소녀 역의 클레어 포이는 참 예쁩니다. 킬리 호스와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중간 쯤 위치하는 외모랄까. 이 사람 나온다는 [리틀 도리트] 미니 시리즈를 갑자기 보고 싶어졌어요. (11/01/06) 


★★


기타등등

결국 이 영화는 몇 년 동안 제 머릿속에 남아 빙빙 돌 것 같습니다. 계속 도입부와 배우들을 남겨놓고 이야기를 새로 쓰면서 그에 맞춘 영화들을 상상하겠죠.


감독: Dominic Sena, 출연: Nicolas Cage, Ron Perlman, Stephen Campbell Moore, Stephen Graham, Ulrich Thomsen, Claire Foy, Robert Sheehan, Christopher Lee


IMDb http://www.imdb.com/title/tt0479997/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66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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