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Hanna (2011)

2011.04.19 10:19

DJUNA 조회 수:17506


한나는 핀란드의 외딴 숲 속에서 아빠 에릭과 함께 삽니다. 집에 읽을 만한 책은 백과사전 한 권과 그림 전래 동화책 한 권. 한나는 음악을 들은 적도 없고, 아빠 이외의 다른 사람을 만난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 개의 외국어를 능통하게 구사하고 완벽한 사냥 기술과 암살 기술을 가지고 있지요. 아이의 목표는 단 하나. 엄마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마리사 비글러라는 여자를 죽이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이치에 맞아보입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여러분은 이치와 논리에 집중하는 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겁니다. 한나가 마리사 비글러를 불러들이기 위해 신호를 작동하는 부분부터 그렇습니다. 그 신호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나, 에릭이 여기 있소!"라는 뜻인가요? 그럼 처음부터 그 신호는 자발적인 것입니까? 그리고 도대체 왜 마리사 비글러는 한나의 엄마를 죽였고 한나까지 죽이려 하는 걸까요? 영화 속에서 한나와 에릭이 벌이는 살육은 어떻게 정당화됩니까?


영화 끝까지 봐도 답은 안 나옵니다. 억지로 생각하면 몇 개 만들 수도 있습니다. 못할 거야 없죠. 하지만 답은 원래부터 없습니다. [한나]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맥거핀입니다. 거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만큼이나 히치콕적이지요. [한나]의 각본은 논리 따위엔 티끌만큼도 신경을 안 씁니다. 영화를 끌어가는 설정은 오로지 한나와 에릭, 마리사를 움직이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들이 움직인다면 이야기 뒤에 숨은 진상이 무엇이건 상관 없습니다. 사실 설명된다면 오히려 맥이 풀릴 겁니다. 아니, 실제로도 맥이 풀립니다. 영화는 후반에 가서 한나의 정체를 조금 흘리는데, 그 장면은 척 봐도 의무감에 억지로 넣은 거 같아 재미가 없습니다. 그 장면이 들어갔다고 해서 우리가 한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것도 아니고.


이 비논리는 그 자체로 영화에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영화는 첨단 테크노 스릴러 장르로 시작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림 동화에 더 가깝습니다. 적어도 유럽의 구전 동화에서 비롯된 악몽 같고 이상한 분위기를 끝까지 끌고 가지요. 몇몇 힌트들은 놓치기가 불가능할 지경입니다. [한나]는 백설공주가 못된 계모의 목을 꺾으려고 덤벼드는 그림 동화입니다.


액션에 너무 집착하며 영화를 볼 필요는 없습니다. 액션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닙니다. 액션 장면이 매력 없다는 건 더더욱 아니고요. 단지 영화는 한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평등하게 다룹니다. 이들은 모두 중요성과 관계 없이 병렬식으로 무심하게 배열되어 있지요. 미국 정보원들과 킬러들을 따돌리는 액션은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한나가 우연히 만난 영국인 가족과의 관계도 그만큼 중요하게 다뤄요. 한나가 겪는 첫 음악, 첫 데이트, 첫 키스는 액션만큼이나, 아니, 액션보다 더 중요합니다.


[한나]는 의도적으로 자신의 스케일을 소품으로 축소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영화 뒤에 숨겨진 음모들은 그 중 하나만 제대로 터져도 블록버스터 시리즈 몇 편을 만들 수 있는 종류의 것들이지만, 정작 영화 안에서 그것들은 열 여섯 살 소녀의 무전 여행을 위한 동기로만 사용된다는 점을 잊지 마세요. 한나는 절실하고 다채롭지만 깃털처럼 가벼운 영화입니다. 많이들 마지막 한 방이 부족하다고 하지만 전 이 결말이 캐릭터와 드라마에 거의 완벽하게 맞는다고 생각해요. 그 이상의 무게를 부여했다면 오히려 가식적으로 느껴졌겠죠. (11/04/19)


★★★☆


기타등등

케미컬 브라더스의 음악이 진짜로 좋습니다.

 

감독: Joe Wright, 출연: Saoirse Ronan, Eric Bana, Cate Blanchett, Tom Hollander, Olivia Williams, Jason Flemyng, Vicky Krieps, Jessica Barden, Aldo Maland


IMDb http://www.imdb.com/title/tt0993842/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6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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