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트롤 The Boxtrolls (2014)

2014.11.05 13:28

DJUNA 조회 수:6921


앨런 스노우의 동화책 [Here Be Monsters!]가 원작인 [박스트롤]이 그리는 세계는 19세기 말의 테크놀로지와 중세의 사회가 반반씩 섞여 있는 가공의 우주입니다. 무대가 되는 도시 치즈브리지는 딱 뒤러나 보쉬의 그림에 나올 것처럼 생겼고 그런 그림 속에서 나올 것 같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지만 전기가 들어오고 축음기가 있지요.

영화의 '박스트롤'은 치즈브리지의 지하에서 살고 있는 괴물들입니다. 트롤인데 모두 옷 대신 상자를 입고 있어서 박스트롤이죠. 이들은 밤이 되면 땅 위로 기어나와 지상의 쓰레기를 수거해 재활용합니다. 해없는 존재들이지만 10여년 동안 지상 위의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입니다. 다 마을 시장이 되고 싶어하는 아치볼드 스내처의 선동 때문이죠. 박스트롤은 스내처의 사냥감으로 전락하고 점점 수가 줄어듭니다.

박스트롤 일당 중에는 인간 소년이 하나 있습니다. 에그라는 이 이름의 소년에게는 디킨스의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애절한 사연이 있지요. 하지만 그는 그 사연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신이 인간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그는 시장의 딸인 위니를 만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던 자신의 정체성 문제와 마주치게 됩니다.

소박하고 익숙한 플롯으로 지탱되는 이야기지만 주제 면에서 빈약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영화가 다루는 계급 차별, 소수자의 악마화, 정치적 선동의 테마는 결코 동화책 이야기라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죠. 이런 동화책에서 정체성 문제는 진부할 정도로 자주 다루어지지만 [박스트롤]이 그리는 에그의 성장기는 단순한 영웅 이야기로 빠지지 않게 현실적으로 잘 그려져 있습니다.

라이카의 이전 영화들이 그렇듯 스톱모션 영화입니다. 엔드 크레디트 시퀀스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엄청난 장시간 중노동으로 만들어진 작품이죠. 컴퓨터 그래픽 시대에 굳이 이럴 필요가 있나, 하시겠지만 영화가 가진 특유의 오밀조밀한 질감은 아직까진 컴퓨터 그래픽으로 완벽하게 따라잡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다르게 보면 라이카 영화들은 이미 상당 부분 컴퓨터 그래픽에 장악되었다고 할 수도 있어요. 캐릭터의 얼굴 표정과 같은 것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 3D 프린터로 찍은 것이니까요.

[코렐라인], [파라노만]을 재미있게 보신 분들은 [박스트롤]도 재미있게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전 이 세 영화 모두 뛰어난 가족영화라고 생각해요. 이들의 신중한 스토리텔링 방식이 그냥 나른하다고 생각하는 관객들도 있겠죠. 그거야 그 사람들 취향이고, 전 여전히 이들 영화들을 지지하렵니다. 무슨 영화인지 알고 보면 그냥 재미있는 영화란 말입니다. (14/11/05)

★★★☆

기타등등
시사회에서는 더빙판을 상영했습니다. 한 번 더 봐야 할 것 같아요. 더빙판이 나빠서가 아니라(좋았어요), 농담과 같은 것들이 의역되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일단 IMDb를 슬쩍 들여다봐도 탈락되거나 변형된 고유명사들이 보이는 걸요.


감독: Graham Annable, Anthony Stacchi, 배우: Isaac Hempstead Wright, Elle Fanning, Ben Kingsley, Jared Harris, Nick Frost, Richard Ayoade, Tracy Morgan, Dee Bradley Baker, Steve Blum, Nika Futterman, Pat Fraley, Fred Tatasciore

IMDb http://www.imdb.com/title/tt0787474/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9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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