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스의 비밀 The Secret of Kells (2009)

2014.02.02 18:30

DJUNA 조회 수:8916


켈스의 책은 서기 800년쯤에 아일랜드의 수도사들이 만든 책입니다. 라틴어 신약 복음서가 꼼꼼한 장식과 함께 340 페이지의 양피지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 책의 양피지를 만들기 위해 양 185마리가 필요했다고 하더군요. 읽히기 위해서보다는 장식용으로 쓰인 것 같은데 당시만 해도 엄청난 보물이었을 거고 지금도 켈트 미술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아일랜드의 국보임은 말할 필요도 없고.

[켈스의 비밀]은 이 책이 만들어진 과정을 상상하는 영화입니다. 영화는 브렌든이라는 소년 수사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는데, 그는 삼촌이 원장으로 있는 켈스 수도원에서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수도원은 바이킹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요새처럼 지어졌고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목표도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는 높고 튼튼한 담을 짓는 것입니다. 필사실의 도제인 브렌든의 우상은 아이오나의 책이라는 중요한 책을 제작 중인 아이오나의 에이든 수사인데, 어느 날 그가 고양이 팡거 반과 함께 켈스 수도원을 찾아옵니다. 나빠지는 시력 때문에 책을 완성할 수 없다고 깨달은 에이든 수사는 브렌든을 자신의 제자 겸 후계자로 삼고, 희귀한 안료의 재료인 열매를 구하러 팡거 반과 함께 수도원 밖으로 나간 브렌든은 아슐링이라는 숲 속의 요정을 만납니다.

저에게 이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켈스의 책의 내용, 그러니까 신약의 복음서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들이 기독교 수도사인 건 무시할 수 없지만 그들은 자신의 종교에 대해 거의 이야기하지 않아요. 종교는 오직 자신을 밖에 있는 이교도들과 구분할 때만 막연하게 언급될 뿐입니다. 영화 속 켈스의 책은 기독교 성서의 의미보다 야만인들의 폭력에 의해 파괴될 수도 있는 고대 지식의 보존이라는 데에 더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에겐 이 이야기가 기독교에 대한 과거의 이야기보다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의 SF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영화가 기독교 메시지보다 더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켈트 전통과 문화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아일랜드 신화 속의 괴물인 크롬 크루어치와 숲의 요정들이 당연한 등장인물로 나와 악역과 조언자 역할을 해요. 실제로 이들이 없으면 켈스의 책이 완성될 수도 없었다고도 말하죠. 영화는 고대의 위험한 존재들을 처단한 가톨릭 교회의 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지만, 전통적인 믿음을 가톨릭 신앙과 함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아일랜드 사람들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애니메이션 영화입니다. 그리고 아마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뜨이는 부분은 애니메이션의 스타일이겠죠. 한마디로 환상적인 2D입니다. 리처드 윌리엄스의 [욤욤 공주와 도둑]의 중세 아일랜드 버전을 상상하시면 되겠어요. 그렇다고 이를 스타일의 과시라고 볼 수도 없는 것이, 이런 평면적인 화려함과 장식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켈스의 책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죠. 단순히 장식적인 비주얼을 가져온 것을 넘어서 장식가와 필사가라는 주인공들의 직업과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어 있는 겁니다. 장식 자체가 주제인 영화지요. (14/02/02)

★★★☆

기타등등
켈스 수도원의 수도사들은 다국적입니다. 전세계에서 온 온갖 인종의 사람들이 모여있죠. 단지 서기 800년 무렵에 중국인 수도사가 아일랜드에 있었을 것 같지는 않아요.


감독: Tomm Moore, Nora Twomey, 출연: Evan McGuire, Christen Mooney, Brendan Gleeson, Mick Lally, Liam Hourican, Paul Tylak, Michael McGrath

IMDb http://www.imdb.com/title/tt0485601/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54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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