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광구 (2011)

2011.07.26 23:34

DJUNA 조회 수:37646


최소한 전 [퀵]보다는 나은 영화를 기대하며 [7광구]의 시사회장을 찾았습니다. 안 그럴 이유가 뭐가 있답니까. 하지원도 나오고 심해 괴물도 나오는데.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영화 시작 10분만에 알 수 있었죠. 제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총체적 파국이라는 걸. [7광구]는 무언가 문제가 있는 영화가 아니라 그냥 못 만든 영화였습니다.


예를 하나 들까요? 석유시추선 이클립스는 시추 과정 중 새로운 생명체를 발견합니다. 해저생태연구원인 현정은 이들이 화학합성생태계에서 온 생명체라고 설명해요. 그럴싸하군요. 근데 사람들이 그게 뭐냐고 묻자, 현정은 동그라미를 두 개 그리더니, 위에 있는 건 광합성생태계고 밑에 있는 건 화학합성생태계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게 설명의 끝입니다. 어떻게 이게 설명이 되지요? 이걸 설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이상한 게 아닙니까? 이건 건성으로 쓴 각본인 겁니다.


설명이 나쁘다고 해도, 화학합성생태계에서 온 심해 괴물은 그럴싸하지 않냐고요? 네, 그럴 수도 있지요. 하지만 그래도 당위성은 있어야 합니다. 자, 한 번 화학합성생태계에서 온 심해 동물이 육지에서 공기를 호흡을 하며 인간들을 사냥할 수 있는 능력과 지능을 가진 거대 괴물로 진화할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시죠. 도대체 화학합성생태계의 정의가 뭔지 생각은 하고 각본을 쓴 건가요. 당연히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요. 그리고 제대로 된 SF라면 당연히 이를 설명하기 위한 절묘한 이론을 갖추어야 합니다. 하지만 [7광구] 어딜 봐도 그런 건 없어요.


그냥 우리가 모르는 사연이 있는 괴물이 나오는 영화로 보면 되지 않냐고요? 그게 잘 안 됩니다. 위반하는 과학법칙이 너무 많으니까요. 이 심해 생물을 가치 있게 만드는 특성은 그냥 과학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그런 게 만약 가능하다고 해도, 굳이 영화에 나오는 방식대로 다루어야 할 이유는 없지요.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 몇 명은 과학자임이 분명한데도 과학적 상상력이 제로입니다.


과학이 엉망이어도 괜찮은 SF 영화들이 있습니다. 드라마, 액션, 호러, 연기, 미술처럼 엉터리 과학으로 망가지는 영화를 살릴 수 있는 구원병은 얼마든지 있죠. 하지만 [7광구]에는 그런 게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특히 첫부분은 재난에 가깝습니다. 앞으로 액션에 몰아넣을 이클립스 시추선의 승무원들을 한 명씩 소개하는 중요한 장면인데, 끔찍한 대사, 그보다 더 끔찍한 농담, 뻣뻣한 러브라인 그리고 재미없거나 진부하거나 불쾌한 캐릭터들이 아무렇게나 던진 당구공들처럼 이리저리 굴러다니죠. 이들은 모두 터프하거나 웃기거나 까칠해 보이기 위해 지나치게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내내 심하게 어색합니다. 주변에서 뭔가 신기한 일이 일어나는 중인데도 그게 뭔지 관심도 없는 모양이고요. 이렇게 몇십분을 간신히 넘기면 이들 중 누군가가 심해 괴물에 의해 갈갈이 찢겨도 상관하지 않게 되지요.


여기서 가장 손해보는 건 배우들입니다. 캐스팅 자체는 준수합니다. 대부분 배우로서 자기 재능을 한 번 이상 인정 받은 사람들이죠. 하지만 [7광구]에서 이들은 모두 거의 말도 안 되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하지원은 한숨이 나옵니다. 지독하게 노력하고 애쓴 건 알겠는데, 그놈의 눈빛 연기는 도대체 어쩌려고 그러는 겁니까. 이 사람은 지금 아주 위험한 지점에 와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중간과정을 통해 괴물이 이클립스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한 뒤로는, 할리우드에서 나온 여러 괴물 영화들과 봉준호의 [괴물]에서 가져온 조각들을 대충 엮기 시작합니다. 어느 건 [에일리언] 시리즈에서, 어느 건 [레비아탄]에서, 어느 건 [딥 라이징]에서 가져왔습니다. 어느 것도 놀랍지는 않습니다. 이것들은 그냥 간신히 형태만 유지하고 있습니다. 왜 이걸 다시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하면 할리우드에서 이미 진부해진 것들이 뭔가 다른 것으로 바뀝니까?


특수효과는 어떠냐고요. 10년 전이라면 "우리도 이런 걸 할 줄 아는구나"하며 자랑스러워했겠지만, 지금은 10년 전이 아니지 않습니까. 괴물 CG는 그럭저럭 괜찮지만 경천동지할 정도는 아니며, 디자인은 [괴물]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아 심심합니다. 3D요? 전 영화의 4분의 1 정도를 안경 벗고 봤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화면이 밝고 좋던 걸요.


[7광구]는 특별히 존재할 이유가 없는 영화입니다. 이야기와 아이디어는 이미 오래 전에 나왔던 것들이고, 모두 이전 영화들이 더 잘 했습니다. 관객들에게 남은 건 영화를 보며 한동안 잊었던 에너지 주권과 제7광구의 꿈을 다시 꾸어보는 것뿐이죠. 아, 그런데 정말 영화를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는 7광구에서 석유를 찾을 거야"로 끝냈어야 했나요? 너무 노골적이라 없어보인단 말입니다. (11/07/26)


★☆


기타등등

장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간담회에서 "난 이 장르에 관심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건 정말 듣기가 싫습니다. 사실이더라도 그렇게 쉽게 말해서는 안 되는 거죠.

 

감독: 김지훈, 출연: 하지원, 안성기, 오지호, 이한위, 박철민, 송새벽, 차예련, 민석, 박정학, 다른 제목: Sector 7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Sector_7.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48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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