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볼 Moneyball (2011)

2011.11.04 23:34

DJUNA 조회 수:24805


아마 일반적인 야구영화라면, [머니볼]의 주인공 빌리 빈은 악역이었을 겁니다. 그는 예일대를 나온 뚱보 청년이 제시한 통계학적 이론에 따라 팀을 뜯어고치려는 제너럴 매니저로, 선수들을 통계의 숫자로 취급하고, 그들과 인간적인 관계를 맺지 않으며, 심지어 그들의 경기도 보지 않습니다. 장르 영화에서 이런 인물들의 미래는 대부분 정해져 있죠.

하지만 마이클 루이스의 논픽션을 각색한 [머니볼]은 일반적인 장르 영화가 아닙니다. 이 영화는 스포츠 영화 장르의 모양을 거의 완벽하게 뒤집습니다. 야구 이야기지만 경기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고, 선수들은 거의 엑스트라 수준입니다. 몸짱 선수 대신 그들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사람들이 주인공인 영화죠. 스포츠 영화의 폭발적인 클라이맥스나 감동 같은 것도 없습니다. 물론 이 영화도 자기만의 클라이맥스도 있고 정서적으로 고양되는 부분도 있지만, 스포츠 영화의 방식으로 진행되지는 않습니다.

빌리 빈이 의지하는 것은 세이버매트릭스라는 통계학적 방법입니다. 빌 제임스라는 인물이 고안한 이 방법을 이용하면 선수들의 능력과 기록을 통계학적으로 분석해서 최대한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유감스럽게도 전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이게 어떻게 먹히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다른 모든 장점들을 희생해서 지켜야 할 만큼 출루율이 중요한 이유가 뭔가요.

빌리 빈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가 있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팀은 가난하기 짝이 없어서 선수들에게 투자할 수 있는 돈이 많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팀이 눈독 들이지 않는 무명선수들을 발굴해야 하는데, 위험부담을 최소한으로 줄이려면 최대한 과학적인 방법을 택하는 것이 좋겠죠.

이 때문에 영화는 스포츠 영화보다 과학 영화에 더 가깝습니다. 스포츠 장면이 없는 대신 도표와 숫자들이 등장하고 그에 대한 지적인 토론들이 이어지지요. 음악도 예외가 아니어서, 내용을 모르고 마이클 다나의 음악만 들으면 이게 무슨 수학자 전기영화 음악인가 의심할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여기에 인간적인 요소가 없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인간적인 면은 그 부분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가장 돋보이죠. 빌리 빈 자체가 그런 인물입니다. 촉망받는 야구선수였지만 선수로서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 그는 스카우터의 감에만 의지해 자신과 같은 선수를 뽑아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세이버매트릭스의 수학적 해결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데, 그런 그의 태도와 방법론은 야구에 대한 그의 애정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의 냉정한 태도도 그가 얼마나 섬세한 인물인지 역으로 보여주고요. [머니볼]은 서글픈 자기 부정의 이야기로,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지만 그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빌리 빈의 감정이 어떻건, [머니볼]에는 심술궂게 재미있는 면이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뚱보 청년 피터 브랜드가 바로 그 정점에 있습니다. 평생 야구 한 번 안 했을 것 같은 공부벌레 청년이 야구장에서 인생을 보낸 전문가들을 밀어내고 업계에 파란을 몰고 오는 이야기가 아닌가요. 완벽한 [너드의 역습]이죠.

영화는 이 흐름을 다소 모호한 위치에서 바라봅니다. 빌리 빈과 피터 브랜드의 노력과 업적은 예찬됩니다. 하지만 위치가 살짝 어긋난 클라이맥스와 결말을 보면 영화가 그들과 완전한 의견일치를 보는 거 같지는 않습니다. 분명 통계적 방법은 의미가 있지만 야구는 그것만으로 정복할 수 없는 게임이며, 정말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그게 아주 좋은 뉴스만은 아닐 거라는 거죠. (11/11/04)

★★★☆

기타등등
지금까지 이야기는 모두 영화가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조금 검색해보니, 영화가 주는 정보는 극적인 효과를 위해 많이 변형된 것 같더군요. 피터 브랜드는 가공의 인물이고(원래는 실존인물인 폴 디포데스타의 이름을 그대로 쓰려했지만 당사자의 반대 때문에 캐릭터를 새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빌리 빈의 세이버매트릭스 실험은 그의 멘토였던 샌디 앨더슨 밑에서 훨씬 일찍,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었더라고요. 소문을 들어보니, 그의 실험은 지금 정체상태인 모양입니다. 하긴 비슷한 모방자들이 나오면 소용이 없는 방법이긴 해요.


감독: Bennett Miller, 출연: Brad Pitt, Jonah Hill, Philip Seymour Hoffman, Robin Wright, Chris Pratt, Stephen Bishop

IMDb http://www.imdb.com/title/tt1210166/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51786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 미스터 고 (2013) [5] [1] DJUNA 2013.07.13 19264
4 5백만불의 사나이 (2012) [3] [1] DJUNA 2012.07.12 13337
3 퍼펙트 게임 (2011) [4] [2] DJUNA 2011.12.13 13155
» 머니볼 Moneyball (2011) [13] [1] DJUNA 2011.11.04 24805
1 투혼 (2011) [4] [4] DJUNA 2011.09.23 1294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