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게임 (2011)

2011.12.13 01:01

DJUNA 조회 수:13489


박희곤의 [퍼펙트 게임]은 최동원과 선동렬이 맞붙었던 1987년 5월 16일 경기가 소재인데, 전 여기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습니다. 분명 맨정신으로 그 시기를 지나쳐왔지만, 예나 지금이나 프로야구는 제 관심사가 아니죠. 이런 일들이 일어났는지도 몰랐습니다. 물론 이 영화에 나오는 두 선수의 이름은 대충 압니다만.


하여간 영화는 이 경기를 어마어마한 역사적 순간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경기와 그 경기에 이르는 과정을 거대한 서사시처럼 묘사하지요. 보다 보면 실제 사건을 영화로 옮긴 전쟁영화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나 마켓 가든 작전 같은 사건들을 극화한 서사대작들 있잖습니까. 차라리 정말 그렇게 나갔어도 재미있었을 것 같습니다.


사실 그대로는 아닙니다. 몇몇 허구의 인물들과 사건들이 추가되지요. 보면 티가 납니다. 스포츠에 별 관심이 없는 기자 김서형은 야구팬이 아닌 일반 관객들을 끌어오기 위해 삽입된 모양인데, 그렇게 자기 역할을 잘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해태의 만년 2군 포수인 박만수는 철저하게 멜로드라마의 기능을 위해 만들어진 인물로, 척 봐도 가공의 인물처럼 보입니다. 박만수는 경기 내에서도 큰 역할을 하니까 당연히 영화가 그리는 경기는 87년 당시를 그대로 옮긴 건 아닐 겁니다.


최동원과 선동렬은 그렇게 깊이 있게 그려진 인물은 아닙니다. 하지만 필요한만큼 정확하게 그려졌습니다. 그들이 훌륭한 선수들이고, 라이벌 관계이며, 서로를 질투하고 선망합니다. 일단 이렇게 기반이 서면 이야기는 이들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흐릅니다. 그들이 움직이지 않아도 주변 사람들과 세계가 놔두지 않죠. 네, 전쟁영화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이야기가 천천히 불이 붙어서 전진하기 시작하면 영화는 예상외로 박진감이 넘칩니다. 이미 결말이 노출된 20여년 전 이야기지만, 관객들을 몰두하게 하는 흐름이 형성되는 거죠. 전 그래도 15회까지 연장전을 가니까, 야구만 틀어주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비명을 질러대던 그 옛날이 생각나서 조금 지쳤습니다만, 저처럼 트라우마가 없는 다른 분들은 저보다 훨씬 집중해서 보셨겠죠.


몇몇 단점들이 보입니다. 우선 그렇게 세련되게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에요. 굳이 저렇게 노골적일 필요가 있나, 하는 장면들도 있고. 보면서 80년대 전두환 정권 때 야구를 하고 야구팬이 되는 것에 대한 의미를 조금 팠다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는 일이 별로 없던 김서형을 그 역할에 투입했다면 경기의 힘도 더 살고 드라마도 깊어졌을 거라 생각해요. 지금의 영화는 당시 어린 야구팬이었던 감독의 순수한 기억을 남겨두고 싶어하는 모양이지만요. (살짝 언급은 합니다.)


하지만 [퍼펙트 게임]은 야구팬이 아니고 80년대에 대해서는 나쁜 기억만 갖고 있는 저 같은 관객들도 충분히 냉소를 접고 집중할 수 있는 힘센 스포츠 영화입니다. 배우들도 불필요한 성대모사의 함정에 빠지는 대신 제대로된 진짜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고, 경기 묘사는 박진감이 넘칩니다. 역사적 순간의 힘이 느껴진달까.(11/12/13)


★★★


기타등등

전 한국영화가 그리는 부산 야구팬들이 무서워요.

 

감독: 박희곤, 출연: 조승우, 양동근, 최정원, 마동석, 조진웅, 손병호, 공정환, 현쥬니, 차현우, 이병준, 다른 제목: Perfect Game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Perfect_Game.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6048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 더 캐쳐 워즈 어 스파이 The Catcher Was a Spy (2018) DJUNA 2020.06.17 1868
6 야구소녀 (2019) [1] DJUNA 2020.06.09 3781
5 미스터 고 (2013) [5] [1] DJUNA 2013.07.13 19598
4 5백만불의 사나이 (2012) [3] [1] DJUNA 2012.07.12 13614
» 퍼펙트 게임 (2011) [4] [2] DJUNA 2011.12.13 13489
2 머니볼 Moneyball (2011) [13] [1] DJUNA 2011.11.04 26990
1 투혼 (2011) [4] [4] DJUNA 2011.09.23 1324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