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고 (2013)

2013.07.13 16:50

DJUNA 조회 수:19598


허영만 자신도 [제7구단]이 미래에 영화로 만들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겁니다. [달려라, 하니] 스타일의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가능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야구하는 고릴라가 나오는 실사영화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아닙니까.

하지만 이 영화를 각색한 김용화의 [미스터 고]에서 이런 핸디캡은 오히려 영화를 만들어야 할 이유가 됩니다. 할리우드에 뒤지지 않는 특수효과를 넣은 영화를 만들어 중국 시장에 진출하는 게 목적이라면 당연히 보통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스펙터클이 들어가야 합니다. 야구하는 고릴라라면 썩 좋은 선택이죠. 단지 중국 관객들이 야구라는 스포츠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게 조금 걱정되긴 하지만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야구하는 고릴라 이야기입니다. 단지 원작과는 달리 주인공을 웨이웨이라는 중국소녀로 바꾸었지요. 웨이웨이는 서커스 출신 소녀로 야구하는 고릴라 링링의 조련사입니다. 단장 할아버지가 도박빚을 남기고 죽자, 웨이웨이는 한국에서 제2의 기회를 모색하는데, 사기꾼 기질이 농후한 에이전트 성충수가 링링을 두산베어스의 정식 선수로 기용한다는 아이디어를 냅니다.

영화는 가장 중요한 특수효과의 문제를 무리없이 해결했습니다. CG로 만들어진 두 마리의 고릴라는 아무런 위화감 없이 배우들과 스토리 사이에서 녹아듭니다. 특수효과를 위해 무리한 스펙터클을 끼워넣는 일도 없고요. 무엇보다 링링이 연기를 잘 합니다. '악당 역'의 고릴라 레이탕도 그 정도면 인상적이고요. 

단지 스토리가 걸립니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사람들이 스포츠 영화에서 기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거든요. 

스포츠 영화의 매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링링이 야구 게임의 재미를 더해주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가기만 하면 홈런을 치는 선수이니 일종의 기계장치의 신이죠. 링링 자체도 게임을 한다는 것에 특별히 관심이 없고요. 아니, 이 영화엔 야구 자체에 관심이 있는 캐릭터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두 주인공 웨이웨이와 성충수가 관심을 갖고 있는 건 오로지 돈입니다. 웨이웨이에게는 서커스단을 다시 살릴 수 있는 돈이 필요하고, 성충수는 링링의 몸값을 불려 일본 야구단에 팔아넘기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 목적을 위해서 둘은 뭐든지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 결과, 이 영화가 주는 재미는 언제 들통날지 모르는 음모를 꾸미는 사기꾼들이 주인공인 범죄물의 서스펜스에 쏠려 있습니다. 

이러니 주인공들은 심하게 부정적입니다. 성충수는 영화가 거의 끝날 무렵까지 악당입니다. 심지어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받아야 할 웨이웨이 역시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일단 이 아이가 링링과 레이탕, 특히 레이탕을 대하는 태도는 지나치게 차가워요. 인터뷰를 들어보면 배우 서교도 이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에 애를 좀 먹었던 모양이더군요. 막판이 되면 저같은 사람은 악당 역을 맡은 사채업자인 림샤오강이 과연 악당이긴 한 건지 의심했습니다. 몇몇 장면에선 림샤오강이 웨이웨이보다 더 나은 사람처럼 보이니까요.

김용화도 이를 모르지는 않을 겁니다. 실제로 드라마는 '개심 스토리'에 상당한 비중을 할애하고 있어요. 하지만 정작 개심이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해야 할 부분에서 주인공들은 엉뚱한 행동이나 하고, 그 과정에서 두 고릴라들은 "동물 학대!"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지독한 일들을 당합니다. 당연히 그 개심은 한참 모자라죠. 

더 화가 나는 것은 영화가 이 과정을 그리는 동안 두 고릴라를 미국 남부 배경 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는 흑인 노예처럼 묘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링링은 암만 봐도 엉클 톰이에요. 그런 행동을 하는 링링의 모습은 감동적이지만 전 그런 행동을 강요하는 이야기 자체에는 냉정해질 수밖에 없더군요.

1차 목표 달성은 한 영화입니다. 영화 속 고릴라 캐릭터는 성공적이었으니까요. 한중합작의 중요한 연결점이었던 서교의 연기도 좋았어요. 걱정했던 한국 배우와의 어울림도 만족스러웠고요. 사람들이 김용화의 영화에서 기대했던 멜로드라마도 충분한 양으로 있습니다. 단지 전 이것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13/07/13)

★★☆

기타등등
1. 이 영화에 나오는 중국인 캐릭터들은 대부분 한국인 배우들이 연기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2. 배우들 중 가장 임팩트가 큰 사람은 카메오로 잠시 나오는 오다기리 조입니다.


감독: 김용화, 배우: 성동일, 서교, 김강우, 김응수, 변희봉, 김정태, 김희원, 마동석. Joe Odagiri, 다른 제목: Mr. Go

IMDb http://www.imdb.com/title/tt2969458/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5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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