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진 시간 (2016)

2016.11.01 21:44

DJUNA 조회 수:10749


[잉투기]의 감독 엄태화의 신작은 엉뚱하게도 초등학생 아이들이 주인공이 판타지 영화입니다. 그런 영화의 포스터에 왜 강동원이 있냐고요. 그게 설명이 좀 까다롭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수린이라는 소녀입니다. 엄마를 잃고 새 아빠와 함께 화노도라는 섬에 왔죠. 여기서 수린은 성민이라는 소년과 친구가 되는데, 어느 날 이들은 공사장 발파 현장을 구경하러 친구들과 함께 산에 갔다가 실종되고 나중에 수린 혼자만 돌아옵니다. 수린은 아주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데, 나무 밑에 있는 동굴에서 '시간을 잡아 먹는 요괴 알'을 발견했고 자기가 머리핀을 찾으러 다시 동굴로 들어갔을 때 그 알이 깨졌다는 것이었죠. 그리고 며칠 뒤에 자신이 성민이라고 주장하는 남자가 수린을 찾아옵니다. 그 동안 성민과 친구들은 정지된 시간 속에서 십여년을 보냈고 오로지 성민만이 그 시간의 감옥에서 산 채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거죠.

[가려진 시간]은 세상에 떠도는 괴담 중에 가장 오싹한 이야기를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실종, 그것도 어린아이들의 실종요. 죽음의 이야기는 슬프고 비참해도 기승전결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종 이야기는 '결'이 없죠. 그 때문에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 온갖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이야기는 그 수많은 상상 속에서 오싹함을 유지합니다. 하멜린 사람들이 아직도 실종된 아이들을 기억하는 것도 그 때문이겠죠.

하지만 엄태화는 호러영화를 만들고 있는 게 아닙니다. 영화는 미스터리 대신 성민의 경험을 그대로 관객들에게 전달합니다. 물론 이 이야기를 믿을 수 있느냐는 관객들의 선택이지만 굳이 그렇게 의심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이 이야기의 정서적 힘은 성민을 완전히 믿는 수린에 대한 감정이입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물론 엄태화가 모든 패를 펼쳐놓고 설정을 짜놓았기 때문에 전 습관적으로 구멍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정지된 시간 속에서 아이들이 십여년을 보냈다면 왜 그 약탈의 흔적이 섬에 남아있지 않은 걸까요? 아무리 섬이 커도 어른 성민이 나타났을 때 그 충격이 섬 전체에 폭발처럼 일어났어야 합니다. 음식들과 물건들이 동시에 사라지고, 만화방에서는 허공에 떠 있던 책들이 우수수 떨어지고, 사방엔 엄청난 바람이 일고 무엇보다 화장실 문제가... 하지만 정지된 시간 속에서 아이들이 살아남는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설정이긴 하죠.

영화의 분위기는 [시벨의 일요일]을 좀 닮았습니다. 어린 소녀와 아무래도 정상이 아닌 성인 남자의 이야기요. 당연히 위태로운 설정이고 주변 사람들도 돌아온 성민이 소아성애자 살인자라고 생각합니다. 영화가 이 위험성을 완벽하게 극복했다고 말하지는 못하겠어요. 하지만 영리하게 피한 부분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강동원 캐스팅은 절묘하죠. 그 나이 또래 한국 남자 배우들 중 '아저씨' 느낌이 이렇게 적은 배우도 드무니까요. 그보다 더 절묘한 건 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세상에서 가장 당연한 것처럼 절실하게 연기하는 수린 역의 신은수지만요.

제가 좀 무서워하는 부류의 이야기입니다. 전 위험에 빠진 아이들을 보는 게 무섭고 그 아이들의 말을 어른들이 믿지 못할 때 더 무서워요. 그리고 이건 이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인 것입니다. 어른들의 불신 속에 갇히고 비난받고 공격당하는 아이들요. 이들의 아이다운 선택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종종 갑갑해서 미칠 지경이지만 그 결과 연출되는 갑갑함의 감정은 현실세계에서도 결코 드문 일이 아니겠죠. (16/11/01)

★★★

기타등등
화노도라는 섬 이름은 노화를 거꾸로 쓴 거라나요.


감독: 엄태화, 배우: 신은수, 강동원, 이효제, 김희원, 권해효, 엄태구, 문소리, 다른 제목: Vanishing Time: A Boy Who Returned

IMDb http://www.imdb.com/title/tt5698496/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4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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