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세계 (2017)

2016.12.26 00:10

DJUNA 조회 수:6071


백합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안정민의 [소녀의 세계]를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이 영화는 빼도박도 못하는 '백합물'이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배경은 작은 소도시나 대도시 변두리에 있는 여자고등학교입니다. 이 고등학교 묘사에서 사실성을 기대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계에는 한국어를 쓰긴 하지만 입시 압박도 없고 디지털 기기도 없는 평행우주의 공간입니다. 단지 아이돌은 있고 아이돌 열성팬은 있습니다. 주인공 언니가 아스트로 팬이라 아토커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집단 따돌림을 당하죠. 이 영화의 주인공 중 한 명인 헬로 비너스의 나라가 아스트로와 같은 소속사라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겠습니다.

영화의 이야기는 사진이 취미인 봉선화라는 소녀가 우연한 기회에 연극반의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에서 줄리엣 역을 맡게 되면서 시작됩니다. 이 역할은 학교의 모두가 노리고 있었는데, 그건 이 학교의 아이돌인 하남 선배가 로미오를 연기하기 때문이죠. 하남 선배는 3학년이니 올해말고는 기회가 없습니다. 별다른 노력없이 천진난만하게 이 부러운 자리를 차지하게 된 선화는 곧 연극부에 감도는 복잡미묘한 분위기를 감지합니다. 그리고 그건 연극부 부장인 수연 선배와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는 다듬어지지 않은 장르 재료의 집합소입니다. 선화, 하남 선배, 수연 선배는 모두 거의 원형적인 장르 캐릭터로 새로운 해석 같은 건 전혀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너무 날 것이라 종종 민망할 정도죠. 특히 하남 선배는 한국 연속극 잘 생긴 남자 주인공이 할 법한 행동은 거의 모두 합니다. 이 세 학생의 이야기도 결말까지 가면 친숙하기 그지 없는데, 그 때문에 굉장히 고풍스럽게 보이기도 합니다. 신지식 같은 작가들이 썼던 20세기 소녀소설의 분위기도 많이 풍기고요. 그만한 세련됨과 사실성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만. 차라리 6,70년대로 시대배경을 옮겼으면 더 그럴싸했을 거란 생각도 했습니다. 제작비 때문에 불가능했겠지만.

당연히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권태기에 접어 든 오래 된 커플 사이에 마성의 꼬꼬마가 나타났다' 정도로 이해하시면 되는 이야기죠. 단지 영화는 어떻게든 이 이야기를 안전하게 꾸미려고 하고 여기서 '백합'과 비현실적인 세팅은 순진무구한 알리바이가 됩니다. 주인공 중 한 명이 '다른 사람의 시선'에 대해 이야기하긴 하지만 이 역시 큰 영향을 주지 못하고 백합물의 이야기 속으로 사라집니다. 하지만 이런 조작된 안전함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없지는 않은 게, 선화 역의 노정의와 하남 선배 역의 권나라의 나이차가 상당하니까요. 극중 설정을 보면 겨우 두 살 차이지만 화면에선 중학생과 교생 선생처럼 나오거든요. 키스신 같은 장면은 설정이 아무리 천진난만해도 좀 아슬아슬해보입니다. (16/12/26)

★★

기타등등
동명의 웹툰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작품입니다.


감독: 안정민, 배우: 노정의, 조수향, 권나라, 다른 제목: Fantasy of the Girls

IMDb http://www.imdb.com/title/tt5375040/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52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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