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영혼 Ghost (1990)

2015.01.04 17:44

DJUNA 조회 수:7001


브루스 조엘 루빈은 80년대에 뉴욕 지하철이 중요한 무대로 나오는 두 편의 오리지널 각본을 썼는데, 그 중 하나는 [야곱의 사다리]였고 다른 하나는 [사랑과 영혼]이었습니다. 이 중 [야곱의 사다리]는 뉴욕 지하철에 갇히는 악몽을 꾸고 쓴 작품으로 유명한데, [사랑과 영혼] 역시 이 꿈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어요. [야곱의 사다리]와 [사랑과 영혼]은 거의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작품이니까요.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만들어진 시나리오 두 편의 바탕이 되었고 그 중 [사랑과 영혼]으로는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았으니 이 정도면 아주 생산적인 악몽이라고 봐야겠죠.

[사랑과 영혼]은 고전적인 원혼 이야기입니다. 살해당한 남자의 유령이 영매의 도움을 받아 위기에 빠진 여자친구를 구하고 살인범을 잡고 천국으로 간다는 거죠.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특별한 게 하나도 없어요. 사실 영화가 만들어질 때에도 이 이야기에 큰 기대를 하는 사람들은 없었던 거 같습니다. 남자주인공 샘 역은 찍어놓은 스타들은 다 거절해서 (겨우) 패트릭 스웨이지에게 떨어졌고, 지금까지 단독으로 한 번도 영화를 만든 적이 없었던 코미디 전문가 제리 주커에게 감독 자리가 갔죠. 그리고 이 영화는 이들에게 경력의 절정이었습니다. 운의 힘이 컸던 영화였어요.

이 영화가 어떻게 성공했느냐. 사실 완성도와는 크게 상관이 없어요. 루빈의 각본이 할리우드 '웰메이드 영화'의 표본인 건 맞는데, '웰메이드'라는 게 모든 영화에 다 맞는 건 아니죠. 특히 [사랑과 영혼]처럼 귀신과 사후세계를 다루는 영화에서는 어느 정도 논리를 초월한 맛이 있어야 어울리는데, [사랑과 영혼]의 세계와 규칙은 지나치게 명쾌해요. 그 때문에 샘의 귀신은 진짜 귀신보다는 만화책 수퍼히어로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영화는 수퍼히어로 기원담과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이 영화를 진짜 수퍼히어로 영화처럼 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다른 부분도 그렇게까지 만족스럽지는 않아요. 특히 여자주인공인 몰리는 갑갑하기 짝이 없는 캐릭터죠. 오로지 징징거리고 헛발질하고 위기에 빠지고 구출되는 역할로만 존재하는 사람입니다. 돈 걱정이라는 걸 모르는 여피 커플인 샘과 몰리의 로맨스는 현실세계의 무게 없이 얄팍하고 조금은 얄밉고요. (그 때문에 샘의 살해범인 푸에르토리코인 깡패가 지옥에 끌려갈 때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거지만.) 그리고 이 영화의 '웰메이드' 다움은 여기저기에서 끌어온 장르 도식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재미있습니다. 그건 이 절충적인 영화가 관객들이 요구하는 대리만족의 기대치에 딱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죠. 패트릭 스웨이지는 귀신 역에 그렇게 어울리는 편이 아니고 연기도 평범한 편입니다. 하지만 그가 여자친구를 구출하겠다는 순정파 귀신이 되어 뛰어다닐 때에는 믿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의심하기엔 너무 정직해보이니까요. 로맨스가 얄팍하네, 캐릭터가 갑갑하네, 어쩌고라고 했지만 한참 잘 놀 나이에 애인의 죽음을 겪은 사람의 고통과 그런 여자친구를 위기에서 구해주려는 주인공의 노력에 어떻게 몰입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언체인드 멜로디]가 나오는 악명높은 물레 장면도 뻔뻔스럽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적절한 대중음악의 활용과 과하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인 성적 이미지의 활용 때문에 관객들을 쿡쿡 찌르는 구석이 있습니다. 수퍼히어로 영화 같다고 놀려댔지만 샘이 지하철 귀신으로부터 훈련을 받고 수퍼히어로 귀신이 된 뒤로는 정말 수퍼히어로 액션의 재미도 상당한 편입니다. 여기저기에서 잡다하게 가져온 평범한 재료들이 완성도나 독창성과는 상관없이 의외로 잘 묶인 거죠.

그리고 변명없이 그냥 좋은 부분도 있습니다. 그 대부분은 영매인 오다 메이 브라운이 가져가고 있죠. 개봉 당시엔 흑인 스테레오타이프라고 비난을 받기도 했고 그 역시 일리있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 영매 캐릭터는 등장 때부터 사람들의 시선을 확 끄는 구석이 있습니다. 이 영화엔 개성이 분명한 캐릭터가 딱 둘인데, 오다 메이 브라운이 그 중 하나죠(다른 한 명은 샘에게 요다 역할을 하는 지하철 귀신). 몰리보다는 샘과 훨씬 잘 어울리는 연기 파트너이고 둘이 은행 사기를 치는 장면은 이 영화의 진짜 절정입니다. 물론 우피 골드버그는 언제나 끝내줬고.

어제 EBS에서 해주는 걸 다시 봤는데 그 동안 [사랑과 영혼]이 옛날 영화가 된 건 맞더군요. 패트릭 스웨이지, 빈센트 스키아벨리 같은 배우는 모두 고인이 되었고, 특수효과는 구식, 대사나 액션의 스타일도 많이 바뀌었고요. 하긴 웬만한 아이돌들보다 나이가 많은 영화니까요. 저랑 같은 시간에 이 영화를 본 시청자들이 느꼈던 게 90년대의 향수였는지, 순수한 영화적 재미였는지, 전 모르겠습니다. 후자의 비율이 높다면 이 영화의 생명력이 다음 세대로 이어질만큼 높다는 뜻이겠죠. (15/01/04)

★★★

기타등등
텔레비전 시리즈로 리메이크하려는 시도가 있었군요?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의 수퍼히어로 설정을 고려해보면 가능할 것도 같아요.


감독: Jerry Zucker, 배우: Patrick Swayze, Demi Moore, Whoopi Goldberg, Tony Goldwyn, Rick Aviles, Phil Leeds, Vincent Schiavelli, Armelia McQueen, Gail Boggs

IMDb http://www.imdb.com/title/tt0099653/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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