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노만 ParaNorman (2012)

2013.02.02 14:57

DJUNA 조회 수:9473


노먼 뱁콕은 죽은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여러분은 하품을 시작할지도 모르겠군요. 노먼의 일상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미국 아이들이 주인공인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미 골백번은 묘사했던 것들입니다. 노먼은 왕따에다 학교 깡패의 먹이이고, '특별한 능력'은 그에게 어떤 도움도 주지 않습니다. 하긴 자기 영혼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귀신들이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파라노만]은 발동이 빨리 걸리는 영화가 아닙니다. 초반의 페이스가 다소 느긋하기도 하지만, 관객들이 노먼의 이야기가 특별한 게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요새 미국 대중문화에서는 특별하지 않은 아이가 오히려 희귀하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초반에 노먼이 겪는 수난기에는 의외의 무게가 있습니다. 단순히 초능력 소년의 프롤로그로 만족하는 게 아니에요. 무신경한 집단의 폭력을 냉정하게 그릴 뿐만 아니라 그 매커니즘도 연구하고 있지요. 그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노먼이 짊어진 짐이 점점 더 커 보입니다. 이건 결코 초능력으로 단번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요.

액션의 발동이 걸리는 건 마을 묘지에서 300년 묵은 좀비들이 살아나면서부터입니다. 노먼이 사는 마을은 300년 전 마녀재판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마을은 이 역사를 관광상품으로 팔아 먹고 살고 있고요. 하지만 죽기 전에 판사들에게 저주를 걸었다던 마녀의 이야기는 진짜였고, 지금까지 그 저주를 아슬아슬하게 막아왔던 노먼의 친척 할아버지가 노먼에게 제대로 인수인계를 하지 못한 상황에서 세상을 뜨자, 저주가 터지고 죽은 판사들이 기어나오게 된 것입니다.

일단 발동이 걸리면 [파라노만]은 신나는 영화입니다. 액션도 충분하고 코미디도 충분하죠. 하긴 노먼의 컴컴한 일상을 묘사하는 초반부에도 블랙 코미디의 기운이 슬며시 기어올라오고 있긴 했어요. 이것들이 좀비가 기어나오는 순간 거의 폭발합니다. 능청스러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표현도 이 뻔뻔스러움에 한몫을 하고요. 특히 좀비와 관련된 신체손상 묘사는 이 장르가 딱입니다. 

놀랍게도 액션이 진행되는 동안 영화는 오히려 더 깊어집니다. 이야기 자체가 특별히 새로운 차원으로 가는 건 아닙니다. 영화는 늘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를 해요. 집단은 종종 멍청함과 비례해서 잔인하다는 것이죠. 그들을 놀리는 데에도 주저하지 않고요. 그러나 영화는 그런 그들을 묘사하는 데에 있어 상당한 성숙함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성숙함의 주체는 주인공 노먼입니다. 그 아이는 이미 제가 평생 도달할 수 없는 어른스러움의 영역에 도달해있습니다. 아마 그것 자체가 초능력인지도 모르죠. 노먼의 초능력은 무엇을 부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보지 못하는 존재들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니까요.

한동안 영화판 [레 미제라블]을 보면서 힐링을 하는 게 유행이었지요. 19세기 초엽의 프랑스 역사로 그런 것이 가능하다면 전 오히려 [파라노만]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적어도 이 끔찍하고 어리석은 세상에서 이성과 인간성을 잃지 않고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으니까요.   (13/02/02)

★★★☆

기타등등
영화 끝나고 쿠키 있습니다. 

감독: Chris Butler, Sam Fell, 배우: Kodi Smit-McPhee, Tucker Albrizzi, Anna Kendrick, Casey Affleck, Christopher Mintz-Plasse, Leslie Mann, Jeff Garlin, Elaine  Stritch, Bernard Hill, Jodelle Ferland, Tempestt Bledsoe, Alex Borstein, John Goodman, Hannah Noyes, Jack Blessing

IMDb http://www.imdb.com/title/tt1623288/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87304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