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빅 스페이스 트래블]이라는 소련 영화를 보았습니다. 발렌친 셀리바노프가 감독한 1975년에 나온 어린이 SF예요. 원작은 세르게이 미할코프의 [The First Three, or the Year of 2001]이라는 1970년작 희곡이고요. 당시엔 대작이었나봐요. 촬영에 2년이나 걸렸다고. 아이들이 주연인 영화에서 이러면 좀 곤란할 텐데 말이죠. 하지만 러닝타임은 66분. 전 결말의 스포일러를 알고 보았는데, 감상엔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 리뷰에서도 노출할게요. 솔직히 챙겨보실 분은 많지 않을 거 같아요.

시대배경은 당연히 공산주의 유토피아인 미래. 대부분 소련 영화의 유토피아가 그렇듯, 이 영화의 도시도 좀 피서지 비슷한 곳이에요. 미래적인 차와 건물들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기술은 좀 왔다갔다합니다. 예를 들어 이 세계의 텔레비전은 다 흑백이거든요. 그런데도 소행성대에 인공중력이 작동하는 우주선을 날려요. 이 사람들도 2001년이 정말 이럴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겠지요.

영화의 주인공 스베타, 사샤, 페디야는 우주비행사로 뽑힌 청소년들입니다. 이들은 유일한 어른인 이고르 칼리노프스키 선장과 함께 아스트라라는 우주선에 탑승합니다. 그런데 선장은 갑자기 병에 걸리고 세 주인공들은 어른의 간섭 없이 우주여행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들을 해결해야 합니다.

온갖 재미있는 일들이 일어나야 할 순간이죠. 하지만 영화는 의외로 내성적이고 느립니다. 주인공들은 모두 심리적인 문제점이 있고 수많은 과거 회상이 들어가 이를 설명해요. 할리우드식 모험담을 기대하지는 마세요. 그러고 보면 소련 SF 영화들은 밝은 미래를 그리면서도 늘 서글프고 아련한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아주 밝고 신나는 모험물을 본 기억은 없어요. 유토피아에 도달하면 사람들은 다 그렇게 되는 걸까요?

과학은 거의 무시한 영화입니다. 소행성대로 가는 우주선에 인공중력이 있고 소행성대는 [제국의 역습] 뺨칠만큼 분주하고. 인공중력은 연극이 원작이기 때문에 그랬겠죠. 세 주인공의 내면이 액션보다 더 중요했을 수도 있고. 하지만 과학의 밀도가 조금 더 높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영화 후반에 반전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일어난 모험은 모두 시뮬레이션이었어요. 주인공들은 모두 우주선을 떠난 적이 없었지요. 할리우드 영화에서라면 억울하기 짝이 없었을 거예요.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모두 조금 쓸쓸한 애들이거든요. 웬지 이 실망스러운 결말의 감정에 어울리고 또 이를 잘 받아들입니다. (20/04/12)

★★☆

기타등등
얼마 전에 작고한 우주비행사 알렉세이 레오노프가 영화 후반에 카메오로 등장해 관객들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레오노프는 여기서 기술 자문과 캐스팅 디렉터도 맡았다는데, 도대체 기술 자문으로서 뭘 했다는 건지 알 수 없어요.


감독: Valentin Selivanov, 배우: Ludmila Berlinskaya, Sergei Obrazov, Igor Sakharov, Lyusyena Ovchinnikova, Pavel Ivanov, Ninel Myshkova, Zinaida Sorochinskaya, Alexei Leonov 다른 제목: A Great Space Voyage, The Big Space Travel

IMDb https://www.imdb.com/title/tt0321492/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