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어스 After Earth (2013)

2013.06.02 17:55

DJUNA 조회 수:14862


[애프터 어스]는 윌 스미스와 제이든 스미스의 사사로운 프로젝트로 시작한 영화입니다. 원래 아들과 대화 도중 윌 스미스가 만든 아이디어는 현대배경의 모험담이었던 모양인데, 이게 영화로 옮겨지면서 인류가 오염된 지구를 떠나 우주를 개척하는 천 년 뒤의 미래로 배경이 바뀌었다고 하더군요. 영화를 만들기 위해 전문작가들의 도움을 빌어 300쪽 분량의 설정집을 만들었대요. 이 우주를 배경으로 한 소설 시리즈도 나올 계획이라고 합니다.

영화의 스토리는 70년대 디즈니 실사영화스럽습니다. 단지 SF인 거죠. 고장난 우주선이 근처 행성에 불시작하는데, 살아남은 건 주인공 부자 둘. 그리고 그 행성은 알고 봤더니 인류가 버리고 떠난 지구. 아빠가 부상을 입었기 때문에 빨리 구조신호를 보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아들이 1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추락한 우주선 후미로 가서 거기에 있는 장비를 이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정글에는 토착 야생동물 이외에도 우주선에서 살아남은 어서라는 괴물이 아들을 노리고 있었답니다.

70년대 디즈니를 빼더라도 여러 가지로 향수가 돋는 설정입니다. 어린 소년의 SF 모험담이니 하인라인이 먼저 떠오르죠. 먼 미래의 통과제의적 모험담이라는 점에서 어슐러 르 귄의 책들이 연상되기도 하고요. 영화는 새롭지는 않아도 전통의 무게를 갖춘 그럴싸한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재료들을 갖추고 있습니다.

윌 스미스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하긴 했지만, 감독 샤말란의 재료들도 있습니다. 실제로 이 영화의 모험담은 호러의 측면이 강합니다. 낯선 행성에 버려진 주인공에게 가장 위험한 적이 천천히 뒤에서 그의 냄새를 맡고 따라오는 단 한 마리의 괴물이라는 상황부터가 그렇지요. 밝은 모험담일 거라고는 생각은 버리세요. 이건 스스로의 공포를 극복하며 성장해가는 아이의 이야기입니다. 당연히 컴컴하죠.

이야기 자체의 재미는 큰 편이 아닙니다. 1시간 40분 정도의 준수한 러닝타임을 갖춘 영화지만 체감시간은 훨씬 길어요. 분위기가 어둡고 우울한 건 받아들인다고 해도 모험의 재미가 없는 건 전혀 다른 문제죠. 영화의 속도가 느린 것은 인정해도 이야기가 비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또 다른 문제고요. 이상할 정도로 한가하게 시간을 잡아먹는 전반부보다는 후반부가 낫긴 한데, 그래도 다 합치면 미진한 구석이 많습니다.

SF로도 수상쩍은 구석이 많습니다. 일단 전 오염된 지구를 버리고 다른 별로 갔다, 어쩌구는 그냥 안 믿습니다. 아무리 지구가 험악하게 오염되었어도 다른 별보다는 낫기 마련이죠. 전인류를 다른 별로 이주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지구 정도는 간단히 청소하고 남겠죠. 게다가 초광속 여행으로 몇 시간에서 며칠 사이에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데 아무도 안 돌아가고 있었다?

환경 묘사도 수상쩍습니다. 일단 지구에 이상한 동물들이 살고 있다는 건 수상쩍지만 대충 인정하겠습니다. 그 동안 지구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퓨처 이즈 와일드] 스타일의 엄청난 대진화를 그리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하지만 그런 지구에 산소가 부족해서 흡입기가 필요하다느니 하는 대사들을 듣고 있으면 관객들은 많이 민망해집니다. 붉은 사막 행성에서 온 사람들이 정글 속에서 그딴 소리를 하는 게 믿겨지지 않으니까요. 적어도 그만한 크기의 고양이과 맹수나 개코원숭이들이 살 수 있다면 산소는 충분하다고 봐야겠죠. 동물들이 저산소환경에서 적응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포유류의 호흡기의 효율성은 그렇게까지 쉽게 바뀌지는 않습니다.

전 어서라는 괴물도 아쉬웠습니다. 일단 설정부터 안 좋아요. 페로몬 냄새에 민감한 눈먼 괴물이라면 당연히 다른 냄새에도 민감한 게 정상이겠죠. 피 냄새, 체취 같은 것 말입니다. 물론 열에도 민감한 건 당연한 일이고요. 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말을 말죠. 게다가 아무런 개성도 느껴지지 않는 흔해 빠진 할리우드 괴수 디자인에서는 어떤 공포감도 느낄 수 없어요. 이 영화가 의도했던 것처럼 신화적인 통과제의물이라면 다른 종류의 괴물이 나왔어야죠.

대부분의 관객들이, 제이든 스미스가 연기하는 주인공 소년에게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전 그냥 그러려니하고 봤어요. 그 나이 또래의 아이가 그렇게 위협적인 환경 속에 떨어졌는데, 징징거리지도 않고 뻣뻣하게 굴지도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다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관객들에게 연기나 캐릭터를 보다 와닿게 조절하는 것도 가능했던 일이라고 봅니다.

[애프터 어스]는 샤말란 최악의 영화는 아닙니다. [라스트 에어벤더], [레이디 인 더 워터]와 같은 영화들이 훨씬 나빴죠. 영화의 SF 설정은 뻣뻣하지만, 이를 통한 신화적 스토리텔링에는 와 닿는 부분이 있어요. 최근 샤말란 영화에 대한 비평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 영화에 쏟아지는 혹평은 기계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이 점은 고백해야겠어요. [애프터 어스]는 제가 지금까지 본 샤말란 영화들 중 가장 재미없게 본 영화입니다. 의도도 알겠고 가치도 찾을 수 있는데, 그래도 재미가 없었어요. 그냥 그랬단 말입니다... (13/06/02)

★★☆

기타등등
엔드 크레딧에 나오는 재범의 노래는 정말 분위기를 팍팍 깨더군요.

감독: M. Night Shyamalan, 배우: Jaden Smith, Will Smith, Sophie Okonedo, Zoë Kravitz, Glenn Morshower, Kristofer Hivju

IMDb http://www.imdb.com/title/tt1815862/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0597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