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의 그림책 작가 가브리엘르 뱅상은 [셀레스틴느] 시리즈라는 동화책 연작을 냈는데, 이들은 모두 곰 아저씨 에르네스트와 어린 생쥐 셀레스틴느가 겪는 작은 모험들을 담고 있죠. 시공 주니어에서 이 책들을 몇년 전에 냈는데, 지금은 모두 절판되었습니다. 읽으려면 어린이 도서관에 가야해요. 영화도 나왔고 아카데미 후보에도 올랐으니 다시 나올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이번에 나온 영화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은 이 시리즈의 정확한 각색물은 아닙니다. 이들을 충실하게 영상물로 옮긴다면 십여분짜리 텔레비전 용 단편 정도가 나오겠죠. 대신 영화는 보다 긴 흐름의 이야기를 새로 씁니다. 프리퀄이에요. 어쩌다가 곰인 에르네스트(한국 개봉판에서는 영어화해서 어네스트)가 쥐인 셀레스틴느와 함께 가족을 이루고 살게 되었나.

영화가 그리는 세계는 이족보행하고 프랑스어를 쓰는 곰과 쥐가 20세기 중반정도의 기술문명을 유지하며 살고 있는 곳입니다. 곰들은 지상에서 살고 쥐들은 도시 밑 지하에서 살아요. 프랑스에서 만든 영화가 아니랄까봐 두 세계 모두 막강한 경찰 조직을 갖고 있고요. 그리고 이 세계의 곰과 쥐의 몸 크기 차이는 사람과 고양이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킹콩] 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종종 사이즈가 흔들릴 때도 있습니다만.

이 영화에서 에르네스트는 가난한 거리의 음악가입니다. 셀레스틴느는 화가가 되기를 꿈꾸지만 치과용 의치의 재료인 곰의 젖니를 수집하는 소녀고요. 이를 수집하러 곰들의 세계로 나간 셀레스틴느는 곰 가족에게 쫓기다가 쓰레기통 안에서 잠들고, 배고파서 먹을 것을 찾아 돌아다니던 에르네스트에게 발견됩니다. 처음엔 너무 배가 고파 셀레스틴느를 잡아먹으려고 하던 에르네스트는 어쩌다보니 셀레스틴느의 공범자가 되고 둘은 모두 양쪽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해피엔딩으로 끝나긴 하지만 예상 외로 컴컴한 영화입니다. 외국인 혐오와 인종차별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죠. 단지 영화는 두 세계의 편견을 정확하게 대칭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게 그렇게 이치에 맞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척 봐도 이 영화의 곰은 지배종족이니까요. 그리고 이런 비판을 위해 영화가 셀레스틴느에게 부여한 '조숙함'이 지나치게 '프랑스적'이라는 문제점도 보입니다. 자연스러운 어린이의 대응으로 보기엔 지나치게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며 인위적인 것이죠. 뱅상의 그림책에서 볼 수 있었던 어린이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보다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영화는 뱅상의 그림책에서 볼 수 있었던 섬세한 붓터치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물론 셀 애니메이션의 한계 때문에 완벽한 복제는 불가능해요. 하지만 전체적으로 푸근하고 매력적인 2D 애니메이션입니다. 반질반질한 컴퓨터 그래픽 인형들의 행진들을 보다가 잠시 이런 캐릭터를 보니 저절로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시사회에서 상영한 버전은 한국어 더빙판이었습니다. 장광, 박지윤이 두 주인공을 연기했죠. 오리지널에서는 랑베르 윌송과 폴린 브뤼네, 영어판에서는 포레스트 휘테이커와 맥켄지 포이가 더빙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다른 버전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한국어 더빙판의 질은 높습니다. (14/02/15)

★★★

기타등등
보도자료에서는 박지윤을 '[겨울왕국]의 안나'로 소개하고 있더군요. [겨울왕국]의 성공이 직업 성우들의 입지를 높이는 데에 큰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감독: Stéphane Aubier, Vincent Patar, Benjamin Renner, 출연: Pauline Brunner, Lambert Wilson, 다른 제목: Ernest & Celestine

IMDb http://www.imdb.com/title/tt1816518/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5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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