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콘스탄트 님프 The Constant Nymph (1943)

2012.12.05 00:04

DJUNA 조회 수:7947


[더 콘스탄트 님프]는 마가렛 케네디라는 작가가 쓴 베스트셀러입니다. 당시 상당한 인기가 있어서 무성영화 시절부터 세 차례나 영화화되었고, 연극으로도 각색되었습니다. 28년에 영국에서 만들어진 무성영화 버전은 히치콕의 아내인 알마 레빌이 작가 중 한 명이었고, 히치콕도 잠시 이 원작으로 영화를 만들 생각을 했었던 모양입니다. 오늘 이야기할 버전은 에드먼드 굴딩이 감독한 43년 버전인데요. 이 작품은 화려한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저작권 문제 때문에 50년대 이후 반 세기 동안 거의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그랬던 것이 2011년에 TCM에서 방영되었고 DVD로도 나왔지요.

루이스 도드라는 작곡가가 이야기의 중심입니다. 그는 스위스에 사는 앨버트 생거라는 음악가의 친구입니다. 생거는 딸이 네 명인데, 심장병을 앓는 14살 소녀 테사는 루이스를 숭배하죠. 하지만 앨버트가 죽고 영국에서 돈많은 친척들이 오자 루이스는 테사의 영국 사촌인 플로렌스와 결혼해버립니다. 이제 테사와 자매는 모두 영국으로 이사오고, 루이스는 플로렌스의 영향 아래에서 시류에 맞는 곡들을 작곡합니다. 하지만 테사는 루이스의 재능이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알아요.

굉장히 통속적인 이야기죠. 특히 클래식 음악에 대한 거의 미신적인 관점은 그렇습니다. 예술가인 남자를 가운데에 두고 서로 그 남자의 뮤즈가 되겠다고 싸우는 두 여자의 설정은 더욱 그렇고. [더 콘스탄트 님프]는 20세기 초반의 실제 음악계보다는 당시 사람들이 막연하게 품고 있었을 법한 클래식 음악에 대한 19세기적인 판타지를 보여줍니다. 종종 '현대음악'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를 드러내는 것도 그런 판타지를 망치기 때문이겠죠.

시놉시스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영화는 굉장히 위험한 영역을 다루고 있습니다. 유부남과 14살 소녀의 사랑 이야기죠. 중간에 세월이 흐르면서 테사도 조금 나이를 먹긴 하지만 그래봤자 15살, 16살 정도입니다. 소문을 들어보니 소설의 내용은 조금 더 노골적이었고, 헤이즈 규약의 제약을 받지 않았던 영국 무성영화 버전은 결말 부분에서 원작에 더 충실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전 여전히 이 이야기가 당시에 이 상태로 각색되었다는 게 참 신기합니다.

예상 외로, 아니 예상대로 불꽃이 팡팡 튀는 영화입니다. 40년대에 워너 브라더스에서 집중적으로 나왔던 '여성영화'의 드라마틱한 통속성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뻔하고 진부한 건 아는데, 각본과 연출의 매서움, 완벽한 캐스팅이 그 통속성을 날카로운 칼처럼 갈아놓는 것입니다.

여기서 전 조운 폰테인의 캐스팅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폰테인은 이 영화를 찍을 때 25살이었습니다. 테사보다 10살 정도 많고 사실 그렇게 십대 소녀처럼 보이지도 않지요. 원작에 익숙한 관객들은 신경 쓰였을 거예요. 하지만 전 이것을 일종의 코스프레처럼 봤습니다. 20대의 배우가 교복과 청소년 옷을 입고 돌아다니며 자신의 나이가 아닌 인물을 표현적으로 연기하는 것으로 봤지요. 그리고 폰테인의 20대 성인 얼굴 위에서 10대 소녀의 불안정한 긴장감이 널뛰는 걸 구경하는 건 강렬하고 이상한 경험입니다. 이 배우에게서 이런 연기를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고전 배우에게서 이렇게 새로운 얼굴을 발견하는 건 자주 있는 일이 아닙니다.

작곡가가 중심인 영화이니, 당연히 음악이 중요합니다. 믿음직한 인물이 이 영화의 음악을 맡고 있죠.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요. 그의 영화음악은 언제나처럼 좋습니다. 무엇보다 사용할 때와 사용하지 않을 때를 정확히 알고 감상주의에 빠지지도 않지요. 하지만 전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등장하는 교향시 [내일]에 대해서는 그렇게까지 깊은 인상을 받지 않았어요. 좋은 곡인데 너무 전형적으로 로맨틱하달까. 전 오히려 코른골트가 작정하고 프로코피예프나 스트라빈스키와 같은 같은 동시대 작곡가의 패스티시를 의도하며 만들었을 루이스의 다른 곡들이 더 재미있더군요. 사실 영화 속에서 루이스 도드는 그렇게까지 현학적인 '현대음악'은 쓰지 않았어요. 테사의 음악 취향이 까다로울 정도로 보수적이었던 거죠. (12/12/04)

★★★☆

기타등등
워너 아카이브 시리즈로라도 소개된 건 다행한 일인데, 그래도 이 정도 영화라면 조금 더 나은 DVD를 낼 수 있지 않았을까요.

감독: Edmund Goulding, 배우: Charles Boyer, Joan Fontaine, Alexis Smith, Brenda Marshall, Charles Coburn, Dame May Whitty, Peter Lorre, Joyce Reynolds, Jean Muir, Montagu Love, Eduardo Ciannelli,

IMDb http://www.imdb.com/title/tt0035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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