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신 W ukryciu (2013)

2013.10.10 08:22

DJUNA 조회 수:6217


1944년, 얀카의 아버지는 유태인 친구의 딸인 에스테르를 지하실에 숨겨줍니다. 얀카는 처음엔 아버지와 자신만의 작은 세계가 잘 알지도 못하는 유태인 여자 때문에 위협받는 것이 싫죠. 하지만 두 여자는 같은 집에 머무르는 동안 점점 더 가까워지고 아버지가 독일군에게 끌려가고 두 사람만 남자 그들의 연대감은 사랑으로 변합니다. 적어도 얀카의 입장에서는 그래요. 하지만 에스테르에게는 다비드라는 남자친구가 있고 언젠가 소련에서 발레 공부를 하겠다는 꿈이 있으며 전쟁은 끝나가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은 여기서 질겁하실 겁니다. 여기서부터 얀카에겐 고약하기 짝이 없는 선택을 할 기회가 있어요. 얀카는 에스테르를 실질적으로 감금하고 있고, 에스테르에게 바깥 세계에 대한 정보를 줄 수 있는 사람 역시 얀카뿐입니다. 그리고 얀카는 그 모든 기회를 잡습니다. 잡다뿐입니까. 자기가 만들어낸 허구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합니다.

이 거짓말과 그밖의 기타 끔찍한 행동들이 만들어낸 거짓말은 위태롭기 짝이 없지만 영화의 러닝타임이 거의 소진될 때까지 아슬아슬하게 버팁니다. 어떤 때는 얀카의 필사적인 방어 때문에, 어떤 때는 기가 막힌 운 때문에. 그러는 동안 냉담하고 수줍지만 평범해보이던 얀카는 레즈비언 클리셰 사전에서 몇 페이지 분량으로 다룰 법한 괴물로 변합니다.

물론 아무리 필사적으로 노력해도 얀카가 만들어내는 작은 세계의 수명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 세계를 만들어내기 위해 얀카가 할 수 있는 일도 한계가 있고요. 이것을 어떻게 푸느냐가 얀카에게 주어진 문제점인데, 영화는 가톨릭적인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도권 종교의 호모포비아에 빠지는 건 아니고 죄의식과 양심에 대한 보다 보편적인 해답입니다. 가톨릭이라고는 했지만 다른 방법도 없었을 것 같아요. 적어도 얀카가 택한 길은 몇 안 되는 길들 중 그나마 긍정적이고 옳은 길입니다. 그 길을 택하기 전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다쳤지만.

어떻게 보건, [은신]은 안타깝고 아슬아슬한 영화입니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저지르는 주인공을 따라가면서 그 고약한 서스펜스를 감정이입한 관객들에게 계속 나누어주는 영화를 상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 길은 인위적이고 익숙하지만 주어진 상황의 강도와 두 주연배우의 연기 때문에 상당한 설득력을 가집니다. (13/10/10)

★★★

기타등등
영화의 전당의 하늘연극장에서 봤는데, 마스킹 없이 레터박스로 상영하더군요. '영화의 전당'이라는 곳에서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그 때문에 영화의 폐소공포증 상당부분이 날아가버렸어요.


감독: Jan Kidawa-Blonski, 배우: Magdalena Boczarska, Julia Pogrebinska, Jacek Braciak, Bozena Dykiel, Tomasz Kot, Agata Kulesza, Krzysztof Stroinski, 다른 제목: In Hiding

IMDb http://www.imdb.com/title/tt3074328/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15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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