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Frank (2014)

2014.10.13 01:35

DJUNA 조회 수:10749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프랭크]를 봤습니다. 알고 있었던 건 마이클 파스벤더가 영화 내내 파피에 마셰로 만든 우스꽝스러운 탈을 쓰고 나오는 밴드 영화라는 게 전부였지요. 보면서 친숙한 느낌이 났어요. 이 어처구니 없는 분위기를 전에 어디서 경험했더라? 아, [초(민망한)능력자들]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염소를 노려보는 사람들]이었잖아. 그래놨으니 영화가 끝나고 나서 이 영화의 원작자가 [염소를 노려보는 사람들]의 존 론슨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제가 흐뭇했겠습니까.

[염소를 노려보는 사람들] 영화판과 마찬가지로 [프랭크] 역시 사실에 바탕을 둔 허구입니다. 단지 그 과정이 좀 달라요. 일단 2010년에 작고한 크리스 시비라는 영국의 코미디언이 있었습니다. 그는 영화 속 프랭크와 비슷한 가면을 쓰고 프랭크 사이드버텀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했어요. 텔레비전 쇼도 했고 밴드 공연도 했지요. 그리고 어쩌다보니 존 론슨은 80년대 말에 그 밴드 멤버가 되어 한 동안 그를 따라다녔던 모양입니다. 그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기사를 썼는데, 그가 공동 각본을 쓴 영화는 그 기사를 그대로 따른 게 아니라 프랭크라는 인물이 코미디언의 캐릭터가 아닌 실존인물인 척 하고 쓴 허구입니다. 기억나시는 분이 계신 지 모르겠는데, [염소를 노려보는 사람들] 영화판도 존 론슨의 논픽션 북을 바탕으로 한 허구의 이야기였죠. 단지 이 영화에서 론슨은 각색 작업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만.

하여간 두 영화에는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정말로 어처구니 없는 일에 빠져 있는 어처구니 없는 사람들이 나오는데 그들은 모두 그 어처구니 없는 일에 너무나도 진지하고 열정적이라 그 어처구니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괴상한 페이소스가 느껴지는 것이죠. 단지 전작은 그 페이소스를 론슨의 참견 없이 끌어냈지만 [프랭크]의 경우는 론슨이 알아서 잡아냈다는 것이 다르죠.

영화는 음악가가 되기를 꿈꾸는 존이라는 젊은 청년의 관점에서 전개되는데, 그는 존 론슨과 유사점이 조금 있긴 하지만 [염소를 노려보는 사람들] 영화판의 밥 윌튼이 그런 것처럼 전적으로 허구의 인물입니다. 어쩌다보니 그는 프랭크라는 가면 쓴 미치광이가 이끄는 이름도 제대로 발음할 수 없는 괴상한 밴드의 임시 키보드 주자가 됩니다. 처음엔 잠시 재미있었지만 거의 자발적인 인질이 된 그는 직장도 잃고 유산도 탈탈 털리면서 밴드의 일부가 되지요.

이 영화를 '음악 영화'라고 보는 데엔 주춤하게 됩니다. 음악영화가 되려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그 음악에 진지해야 하잖아요. 심지어 그 영화가 [이것이 스파이널 탭이다!]처럼 패러디여도 마찬가지. 하지만 [프랭크]의 경우는 그 정도도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영화의 음악은 처음부터 끝까지 잘난 척하며 아방가르드를 시도하는 2류들의 음악을 노골적으로 흉내낸 패스티시입니다. 그렇게 보면 재미있긴 하지만 그래도 진지하게 감상하긴 어렵죠.

이 영화의 가장 처절한 부분은 밴드의 유일한 '천재'인 프랭크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입니다. 프랭크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형적인 '미치광이 예술가'처럼 행동하며 그런 사람들이 만들 법한 음악을 생산해냅니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밴드 멤버들은 프랭크의 천재성을 철저하게 믿어요. 그 때문에 극단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고요. 그러다 후반부에 이르면 영화는 그 믿음을 차분하게 파괴하는데 거의 잔인할 정도입니다.

여기서 프랭크의 광기에 어떤 의미를 찾는 건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광기는 대부분 감기나 암처럼 의미가 없죠. 그냥 일어나는 일입니다. 창조성과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지만 오히려 반대일 수도 있고. 여기서 중요한 건 프랭크의 예술과 광기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느냐가 아닙니다. 척 봐도 무의미하고 초라한 생산물에 목숨을 건 사람들의 진실성입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프랭크]가 전통적인 밴드 영화의 공식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고, 그들의 고통과 좌절을 무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더 처절해 보입니다. 하긴, 우리가 정말 그들이 남이라고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14/10/13)

★★★

기타등등
프랭크의 얼굴이 보이는 후반 장면은 소름끼칩니다. 분명 마이클 파스벤더라는 유명한 사람이 얼굴을 드러내고 서 있는데 그 배우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요.


감독: Lenny Abrahamson, 배우: Domhnall Gleeson, Maggie Gyllenhaal, Michael Fassbender, François Civil, Carla Azar, Scoot McNairy

IMDb http://www.imdb.com/title/tt1605717/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2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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