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그리스트맨]은 로빈 윌리엄스의 유작이라고 홍보되고 있는 영화인데, 사실이 아닙니다. 그가 살아있을 때 개봉된 마지막 영화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지요.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 윌리엄스는 직접 트위터로 이 영화를 홍보하기도 했습니다. 유작이라면 불가능한 일이죠.

97년에 나온 [Mar Baum]이라는 이스라엘 영화 리메이크입니다. 시한부 인생 코미디예요. 주인공 헨리 올트먼은 브루클린에서 가장 불쾌한 인간인데, 교통사고를 내고 병원에 갔다가 성질을 누르지 못한 그는 인턴 샤론 길에게 폭언을 퍼붓습니다. 그의 폭언에 맞서던 샤론은 그에게 남은 수명이 90분밖에 안 남았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정말 헨리가 샤론의 거짓말을 믿었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한 시간 반 뒤에 자기가 죽어 있을지. 헨리는 그 '만약'에 대비하기 위해 브루클린을 뛰어다닙니다. 아내와 마지막으로 섹스도 하고 사이가 안 좋은 아들과 화해도 하고. 하지만 그게 잘 안 됩니다. 한편 자신의 잘못을 되돌리려는 샤론은 헨리의 주변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됩니다.

뭔가 이야기가 나올 거 같습니까? 슬프게도 이 설정에는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심지어 이 영화의 러닝타임은 헨리의 '예상수명'보다 짧은 83분인데, 영화는 이것도 채우지 못해 쩔쩔 맵니다. 간신히 공식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벅차하는 거 같아요. 결정적으로 90분이라는 제한된 시간을 제대로 다루지도 못하죠. 참말이건 거짓말이건 90분을 선고받았다면 이 시간은 올트먼이 병원을 나가는 순간부터 줄어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1시간이 지나서도 여전히 '90분'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당연히 있어야 할 서스펜스는 이 무딘 묘사 속에서 당연히 날아가버리죠.

로빈 윌리엄스는 그의 장기, 그러니까 광기와 어처구니 없는 웃음이 공존하는 어두운 코미디 연기를 보여주고 언제나처럼 잘합니다. 나머지 배우들도 나쁘지는 않아요. 하지만 워낙 재료가 허약하다보니 연기는 그냥 연기로 남습니다. 이것들이 모여 의미있는 무언가가 만들어지지는 않아요.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후반부에 헨리가 하는 대사입니다. "Henry Altmann, 1951 - 2014. I never knew till now it's not the dates that matter....it's the dash". 보통 때 같으면 인생의 의미에 대한 평범한 잠언에 불과했겠지만, 로빈 윌리엄스가 세상을 뜬 뒤로는 그렇게 들리지 않지요. 그는 정말로 1951년에 태어나 2014년에 죽었고 우리는 그 사이에 그가 남긴 업적을 예찬하고 있으니까요. (14/10/20)

★★

기타등등
화면 비율이 1.85:1이어서 건대입구 롯데시네마 시사회에서 보았습니다. 하지만 상영조건이 최악이었어요. 왼쪽 뒤에 있는 스피커가 계속 엉뚱한 사운드를 내고 있더군요. 주인공들이 스크린 위에서 코미디를 하는 동안 뒤에서는 액션 사운드가 나오고 심지어 대사도 들리더라고요.


감독: Phil Alden Robinson, 배우: Robin Williams, Mila Kunis, Peter Dinklage, Melissa Leo, Hamish Linklater, Sutton Foster, James Earl Jones, Richard Kind, Daniel Raymont

IMDb http://www.imdb.com/title/tt1294970/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8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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