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의 끝 (2010)

2011.03.08 23:51

DJUNA 조회 수:16801


[짐승의 끝]은 단편 [남매의 집]으로 미장센 단편 영화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조성희의 첫 장편입니다. 이 작품이 몇 개월 전 CinDi에서 첫 소개되었을 때 반응은 미적지근했다고 하던데, 그게 일반적인 평가라면, 전 이 영화를 주저하지 않고 옹호하는 소수가 될 것 같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순영이라는 젊은 여성입니다. 아기를 임신한 순영은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는 중이죠. 그런데 중간에 야구모자를 쓴 불쾌한 남자가 합승을 하더니 순영과 택시운전사에게 불길한 소리를 해댑니다. 그러다 갑자기 이상한 일이 일어나 순영은 정신을 잃고 그 동안 세상의 전기가 모조리 나가버려요. 시골 길에서 멎어버린 택시에서 기어나온 순영은 문명세계로 나가려는 기를 쓰는 동안, 수상쩍은 시골 아저씨나 야구방망이를 들고 다니는 소년, 역시 차가 멈추어 꿈쩍 못하는 커플과 같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러는 동안 저 멀리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의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영화는 [남매의 집]의 감독이 세트를 떠나 장편을 시도하면 만들어질 바로 그런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종말론적이고 부조리하며 묘하게 웃기면서도 무섭습니다. 그러면서도 [남매의 집]이 공간과 시간의 제약 속에서 하지 못했던 시도를 하고 있죠. 훨씬 영화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세트와 로케이션의 차이가 아니라 아이디어와 그 활용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남매의 집]은 영화를 그대로 연극으로 옮겨도 별 문제가 없지 않습니까. 사용하는 도구들이 해롤드 핀터와 같은 작가들의 부조리극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이니까요. 하지만 조성희가 [짐승의 끝]을 위해 만들어놓은 부조리의 미로는 영화를 떠나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영화의 이야기는 예상 외로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아마 지나치게 쉽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군요. 이 영화의 종교적인 은유는 그냥 표면에 노출되어 있으니까요. 박해일이 연기한 야구모자 남자와 순영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는 건 불필요한 일입니다. 단지 [짐승의 끝]은 종교 영화가 아닙니다. 익숙한 종교 이야기를 자기만의 야비한 방법으로 다시 풀어놓은 거죠. 물론 그 결과물은 초현실적이지만 지독하게 세속적인 코미디가 됩니다. 


기본 스토리를 이해하기 쉽다고 해서 이야기가 모두 앞뒤가 맞고 의미가 있는 건 아닙니다. [짐승의 끝]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모두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거야 말로 감독의 속임수에 넘어가는 일일 테니까요. [남매의 집]의 부조리함이 그랬던 것처럼, [짐승의 끝]의 부조리함도 부조리함 그 자체로 존재합니다. 몇몇 것들은 오로지 긴장감만을 위해 만들어진 게 분명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릭터들과 에피소드들은 독특한 현실감을 갖고 있습니다. 전체 그림은 말이 안 되지만 그걸 구성하는 세부 묘사는 꽤 그럴싸한 것이죠. 특히 친절한 척하며 순영에게 접근하는 자전거 아저씨는 그렇습니다. 자전거 아저씨 뿐만 아니라 나오는 모든 인물들이 드라마의 일차적 기능에서 해방되어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영화의 부조리함 자체가 여기서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죠. 


[짐승의 끝]에서 [남매의 집] 수준의 긴장감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단편의 기능을 장편에서 기대하는 건 소용없는 짓이죠. 하지만 [짐승의 끝]은 [남매의 집]의 연장선에 서서 전작에서 못했던 수많은 것들을 시도하고 있고 그 상당수를 성공시켰습니다. 그 중 저에게 가장 재미있었던 건 티끌만한 제작비와 한줌의 배우들로 세계 종말의 분위기를 완벽하게 살려냈다는 것 자체지만요. 
(11/03/08)


★★★☆


기타등등

감독은 영화에 밤이 나오지 않는 건 편집 실수였다고 하던데,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건지요. 아무도 신경 안 쓸 걸요. 다들 그 세계에선 그런가보다,라고 생각할 겁니다. 


감독: 조성희, 출연: 이민지, 유승목, 박세종, 박해일, 다른 제목: End of Animal


IMDb http://www.imdb.com/title/tt1794784/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3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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