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르 포 Amour fou (2014)

2015.05.11 18:39

DJUNA 조회 수:4047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는 자살하고 싶었습니다. 여러분도 이해하실 수 있을 거예요. 정말 불행한 사람이었지요. 연애운은 최악(동성애자라는 소문도 있어요)이었고 빈털터리였고 아무도 그의 작품의 진가를 몰랐으며 제대로 풀리는 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물론 천성적으로 성격도 나쁘고 세상이 그냥 싫기도 하고 그랬어요.

1811년 11월 21일, 그는 베를린 근방 반제 호수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하지만 혼자 죽은 게 아니었어요. 헨리에테 포겔이라는 암에 걸린 유부녀와 동반자살을 했지요. 그는 이전에도 동반자살이라는 아이디어에 매료되어 있었고 꾸준히 자살 파트너를 찾아다녔다고 합니다.

예시카 하우스너의 [아무르 포]는 헨리에테 포겔의 입장에서 이 사건을 다룹니다. 물론 대부분 허구지요. 헨리에테가 남긴 자료는 거의 없어요.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죽은 두 사람을 제외하면 아무도 모르죠. 하우스너는 처음부터 이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던 건 아니고 동반자살 이야기를 따로 작업하다가 이들 이야기로 넘어갔다고 합니다.

제목을 보고 '두 연인을 죽음에 이르게 한 열정적인 사랑!' 같은 걸 기대하신다면 실망하십니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반대로 가거든요. 영화 속 폰 클라이스트가 헨리에테 포겔에게 열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그건 그를 만나기 전엔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던 헨리에테 포겔도 마찬가지고요. 시인 양반은 그냥 죽고 싶었지만 혼자 죽긴 싫었던 거예요. 아마 겁도 났겠죠. 그래서 파트너를 찾는다는 핑계로 계속 사람들에게 동반 자살 제안을 하고 다니며 살아있었는데, 글쎄 갑자기 헨리에테가 암에 걸렸네요? 영화는 헨리에테가 실제로는 암에 걸리지 않았고 그 모든 증상들이 심리적이었을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어요. 실제로도 그랬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고 그냥 그럴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는 거죠.

로맨스가 들어갈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것은... 글쎄요. SF 호러? [아무르 포]는 은근슬쩍 외계 바이러스를 그린 SF 호러와 많이 닮은 영화입니다. 폰 클라이스트가 심드렁하게 제시한 동반자살 제안이 헨리에테 포겔의 몸과 정신에 침투하는 과정은 여러 모로 오싹해요. 이런 묘사를 통해 영화는 동반자살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부조리하고 폭력적인 개념인지를 드러내고 있어요. 아무리 동반이라지만 결국 사람은 혼자 죽을 수밖에 없죠. 아무리 합의하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도 완벽하게 권력의 균형이 잡혀있지 않다면 한쪽은 살해당한 것이나 다름없고요.

컴컴한 이야기지만 의외로 영화는 코미디이기도 합니다. 특히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는 보고만 있어도 그냥 웃음이 나옵니다. 동반자살 제안을 마치 점심약속이라고 하는 것처럼 아무에게나 툭툭 던지는 사람이에요. 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도 가벼운 짜증 이상은 아니고요. 폰 클라이스트의 팬들은 이 초상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는데, 예시카 하우스너는 그를 처음부터 작정하고 웃기는 인간으로 그리려했음이 분명하고 이는 성공적입니다. 모두가 심각하고 정중하며 끝이 어이없는 폭력으로 끝나는 코미디죠.

그렇다고 하우스너가 폰 클라이스트의 캐릭터와 생각을 허공에서 끄집어낸 건 아닙니다. 어쩌다가 이 사람이 세상을 질색하게 되었는지도 보여주죠. 영화는 프랑스 혁명 직후 19세기 독일 중상층 사람들을 이루는 시스템과 그들의 사고방식을 꼼꼼하게 그린 스케치북이기도 합니다. 이는 폰 클라이스트의 동기를 설명해주기도 하지만 그 묘사 자체만으로도 재미있어요.

자살한 두 사람이 실제로는 어떤 관계였고 어떤 생각으로 그랬는지는 아무도 모르죠. 지금은 한 무덤에 묻혀 있는 그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그렇게 좋아했을 거 같지도 않아요. 하지만 일단 벌어진 일은 더 이상 그들의 독점물이 아니고 후대 사람들은 그 재료로 온갖 짓을 다 할 수 있는 거죠. 폰 클라이스트 자신도 여기에선 무죄가 아니잖아요. (15/05/11)

★★★☆

기타등등
전 헨리에테의 남편이 자꾸 궁금했죠. 그가 영화 속에서 추구했던 개혁을 끝까지 이루었는지 궁금했고. 아, 그는 그 사건이 일어난 뒤 반 년 뒤에 재혼했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아내를 별로 사랑하지 않았던 게 아니냐는 말이 도는데, 전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감독: Jessica Hausner, 배우: Birte Schnoeink, Christian Friedel, Stephan Grossmann, Marc Bischoff, Nickel Bösenberg, Andreina de Martin

IMDb http://www.imdb.com/title/tt3003800/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2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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