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 원]은 [스타워즈 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이 시작되기 전에 올라가는 자막의 앞부분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영화입니다. 저항군이 제국군의 기지를 파괴하는 첫 번째 승리를 거두었고 그 동안 스파이들이 거기서 제국군이 건설한 죽음의 별의 설계도를 빼돌렸다는 것이죠. 이 설계도를 레아 공주가 R2-D2에게 주고 R2-D2와 C3PO가 오비원 캐노비를 찾으러 타투인에 가면서 [스타워즈] 시리즈의 막이 오릅니다.

이 빈칸은 채워도 되고 안 채워도 됩니다. 역시 [새로운 희망]에 잠시 나오는 클론 전쟁 이야기를 굳이 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요. 하지만 [스타 워즈] 우주를 배경으로 한 스탠드 얼론 영화를 만들 생각이라면 이건 꽤 좋은 재료입니다. 몇 가지 핸디캡이 있긴 합니다만, 그런 게 좀 있어야 이야기 쓰는 재미가 있죠.

영화를 끌어가는 주인공은 진 어소라는 범죄자입니다. 진의 아버지 갤런 어소는 제국을 위해 죽음의 별을 설계한 엔지니어죠. 갤런이 보디라는 제국군 파일럿을 통해 그의 옛 친구 쏘우 게레라에게 메시지를 보내자, 저항군에서는 강제수용소에 끌려가던 진을 구출해서 쏘우에게 보냅니다. 처음에 진은 쏘우를 설득하고 빠지려 하지만 점점 죽음의 별의 설계도를 훔친다는 계획에 깊이 말려듭니다.

영화의 이야기와 재료는 참 [스타워즈]스럽습니다. 그놈의 아버지라는 라이트 모티브는 여전하고요. 파괴해야 할 대상이 죽음의 별이란 것도 여전하고요. 영화의 전투 장면도 오리지널 삼부작에서 조금씩 가져온 것 같습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새로운 희망]과 연결되어야 하기 때문에 온갖 카메오와 레퍼런스와 연결고리들이 등장합니다.

단지 접근방식이 다릅니다. 지금까지 [스타워즈] 영화가 SF의 껍질을 뒤집어 쓴 무협 판타지였다면 [로그 원]은 본격적인 전쟁영화입니다. 우주선이 나오는 제2차 세계대전 영화인 거죠. 오리지널 삼부작도 우주전을 묘사할 때 제2차 세계대전을 레퍼런스로 삼긴 했지만 [로그 원]처럼 영화 전편에 써먹지는 않았죠.

이 장르에 맞추자 주인공들의 성격도 바뀌었습니다. 이제 일당백으로 싸우는 제다이 전사는 나오지 않아요. 그 자리를 차지한 건 범죄자, 자기 임무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 스파이, 제국군 탈영병, 장님 성직자, 프로그램을 다시 깐 제국군 로봇과 같은 무리들입니다. 각자 특기가 없지는 않지만 그렇게까지 특별하지는 않은 이들이 모여서 제국과 저항군의 운명을 바꾸어놓는 엄청난 전쟁에 뛰어든다는 게 이 영화의 내용인 거죠. 80년대에 나온 이워크 영화들을 제외한다면 지금까지 나온 [스타워즈] 영화들 중 가장 익숙한 길에서 벗어나 있는 작품입니다. 그 때문인지 초반이 조금 덜컹거린다는 느낌이 없는 건 아닙니다만, 영화의 전체 성격을 고려해보면 그 덜컹거림은 단점으로 남는 대신 영화의 스토리 일부로 흡수되는 느낌입니다.

당연히 비슷한 [스타워즈] 재료를 써도 이야기가 진행 방향이 전혀 달라집니다. 앙상블이 중요해지고 판타지는 많이 날아갑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익숙한 스톰트루퍼 농담이 통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의 제국군은 상당히 센 상대이고 아군의 사망률도 높습니다. 한마디로 주인공에게 특혜가 거의 없는 상황이란 뜻입니다. [스타워즈] 영화들 중 가장 어둡다고도 할 수 있을 텐데, 그 예정된 결말이 영화에 굉장히 강한 정서적 힘을 불어넣습니다.

이 영화의 제작과정에 대해 여러 이야기가 돌고 있긴 하지만 가렛 에드워즈는 이 프로젝트에 썩 잘 어울리는 감독입니다. 전작 모두가 거대한 재앙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잖아요. 이 영화에서도 그 익숙한 테마가 반복되고 에드워즈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제국의 별에 의해 붕괴되는 대지, 거대한 짐승과도 같은 AT-AT 워커, 지평선 저편에서 떠오르는 죽음의 별과 같은 재료들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보세요.

앞으로 계속 나올 [스타워즈] 배경 스탠드 얼론 영화들의 첫 주자로서 [로그 원]은 성공적인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앞으로 나올 영화들이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스타워즈] 우주를 넓혀갈 것인지는 두고 봐야겠죠. (16/12/29)

★★★☆

기타등등
캐리 피셔의 명복을 빕니다. 이 배우의 부고를 듣고 가서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더 울컥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감독: Gareth Edwards, 배우: Felicity Jones, Diego Luna, Alan Tudyk, Donnie Yen, Wen Jiang, Ben Mendelsohn, Guy Henry, Forest Whitaker, Riz Ahmed, Mads Mikkelsen, Jimmy Smits, Alistair Petrie, Genevieve O'Reilly

IMDb http://www.imdb.com/title/tt3748528/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36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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