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떠난 후 Since You Went Away (1944)

2010.12.05 21:32

DJUNA 조회 수:9403


[당신이 떠난 후]는 제가 남몰래 좋아하는 장르인 '제2차 세계대전 전쟁선전물'에 속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미국 본토에 남은 여자들을 주인공으로 한 멜로드라마지요. 이 서브 장르에 속한 작품들도 진짜 전쟁물 못지 않게 많습니다. 전쟁은 전방에서만 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본국에 남은 여성들이 유럽이나 태평양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았던 건 아니란 말이죠.


마가렛 뷰얼 와일더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의 내용은 여러 모로 [작은 아씨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광고회사에 다니며 가족들을 먹여 살렸던 힐튼 집안의 가장 티모시는 전쟁이 일어나자 회사를 그만두고 입대합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별 생각없이 미국중산계급의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던 아내 앤과 두 딸인 제인과 브리짓은 이제 큰일 났습니다. 팍 줄어든 생활비를 감당하기 위해 가족처럼 지내온 흑인 하녀 피델리아를 해고하고 빈 방에 하숙인을 받아야 하죠. 


177분의 러닝타임 동안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영화는 이들을 에피소드별로 묶어 느슨하게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여러분이 영화를 보기도 전에 짐작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새로 하숙인이 들어오고, 큰 딸은 그 하숙인의 손자와 사랑에 빠지고, 전쟁 중 사람들은 죽고, 연인들은 이별하고, 본토에 남은 사람들은 슬슬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고... 그런 거 있잖습니까. 영화가 끝날 무렵이 되면 앤과 제인은 모두 전쟁과 관련된 직업을 갖게 되는데, 당시 그건 이 영화가 주는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메시지였을 겁니다. "여성관객 여러분,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노동력이 필요합니다!"


영화의 모양새를 보면 재미있습니다. 처음에 영화는 어린애 장난처럼 투박하게 시작됩니다. 대사나 연기는 경박하고 가벼우며 거의 유치하기까지 하죠. 하지만 캐릭터가 성장해가면서 영화의 스타일과 어투 역시 발전해갑니다. 그러다 중반 이후에 가면 우린 클래식 할리우드 식으로 완벽하게 통제된 멜로드라마와 마주하게 되지요. 에피소드들을 거치며 성장해가는 연속극을 보는 기분이에요. 그도 이해가 되는 것이, 이 영화는 진짜로 연속극처럼 만들어졌단 말입니다. 감독 존 크롬웰은 데이빗 O. 셀즈닉이 조금씩 떨구는 쪽대본에 의지해 영화를 시간순서대로 찍었어요. 영화 초반에 감독이나 배우들이 작품 방향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해도 조금도 이상할 건 없었단 말이죠.


[당신이 떠난 후]가 그리는 미국은 달콤하고 감상적이며 아름답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전쟁터로 나갔고 곳곳에 전쟁과 죽음의 징후가 떠돌고 있지만 영화는 그를 그대로 드러내거나 하지는 않아요. 영화는 전쟁의 참혹함을 광고할 생각 따위는 없어요. 그건 선전목적과 맞지 않죠. 어떻게든 영화는 군인들이 떠난 고국과 그곳에 남은 여자들을 아름답고 가치있게 그려야 했어요. 그들은 군인들이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야 할 보물이고 가치여야만 했습니다. 


할리우드 영화 비판에 흔히 동원되는 말들 중 '미국중심주의'와 '가족주의'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당신이 떠난 후]만큼 이 두 '주의'를 충실하게 따라가는 작품도 많지 않습니다. 이 두 '주의'는 이 영화의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이를 대놓고 비판하는 건 조금 민망한 일입니다. 전쟁홍보영화라고 제가 앞에서 분명히 말하지 않았습니까. (10/12/05)



기타등등

1. 이 영화를 찍을 당시 큰 딸 제인을 연기한 제니퍼 존스와 남자친구를 연기한 로버트 워커는 실제 부부 사이였습니다. 하지만 이미 제니퍼 존스와 데이빗 O. 셀즈닉은 불륜 사이였고 결혼생활은 무너지기 직전이었죠. 이 상황에서 둘이 영화를 찍는 건 끔찍한 경험이었을 겁니다. 워커의 인생은 이후로 완전히 망가졌고 끝내 회복되지 못한 채 51년에 약물 부작용으로 죽었어요. 그 직전에 알프레드 히치콕의 [열차의 이방인]에 출연해 제대로 된 대표작을 하나 만들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랄까. 아니, 죽은 사람에게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2. 영화 중반에 나오는 기차역의 이별 장면은 고전인데, 전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이미 [에어플레인]에 나오는 패러디를 먼저 봐 버렸던 말이죠. 


3. 알라 나지모바의 카메오가 나옵니다. 배우는 멋있는데, 내용 자체는 닭살 돋을 정도로 노골적인 미국 예찬이지요. 


감독: John Cromwell, 출연: Claudette Colbert, Jennifer Jones, Joseph Cotten, Shirley Temple, Monty Woolley, Robert Walker, Hattie McDaniel, Agnes Moorehead, Alla Nazimova, Lionel Barrymore


IMDb http://www.imdb.com/title/tt0037280/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38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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