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약 The Vow (2012)

2012.03.08 00:52

DJUNA 조회 수:12386


[서약]은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는 영화입니다. 상당히 유명한 이야기로, 심지어 저도 알고 있었죠. 뉴 멕시코에 킴과 크리킷 카펜터라는 신혼부부가 있었는데, 결혼 2주 뒤에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이 사고로 아내 크리킷은 뇌손상으로 연애와 결혼생활에 대한 기억을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크리킷은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지 못했지만 남편과 다시 사랑에 빠졌고 잘 살고 있고, 자기네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책도 썼습니다.

할리우드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기지는 않습니다. 영화화하기에 그렇게 좋은 사람들이 아니거든요. 이들은 독실한 남부 기독교인들로, 그들의 책도 종교적 성향이 강합니다. 그들이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결혼 서약의 중요성에 대한 종교적 믿음 때문이었죠. 이런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영화를 만들면 종교영화가 되어버려요. 할리우드가 바라는 건 발렌타인 시즌에 개봉할 달짝지근한 로맨스인데 말이죠.

영화는 실화의 기본 설정만 따와 새로 이야기를 만듭니다. 리오와 페이지는 결혼 4년차 부부인데, 교통사고로 페이지가 기억상실에 걸려 남편과 결혼생활에 대한 기억을 모두 잃어버립니다. 문제가 되는 건 페이지가 리오와 만나기 전에 집에서 뛰쳐나와 새로운 인생을 살았고, 지금의 페이지가 기억하는 건 그 이전의 인생 뿐이라는 것입니다. 페이지의 부모는 이게 자기 딸의 인생을 되돌릴 기회라고 생각하고, 페이지의 옛 약혼자 역시 새로운 기회를 노리며 접근합니다. 이것들은 모두 이치에 맞는 이야기 도구들입니다. 제대로만 맞추면 통속적이더라도 재미있는 연애영화가 나올 수 있죠.

하지만 정작 나온 영화는 그리 아귀가 맞는 편이 아닙니다. 할 건 다 하고 있는데, 만족스러운 러브 스토리가 되기엔 부족함이 많고 조합과 결합이 좋지 않습니다.

우선 전 남자주인공인 리오를 보는 게 그리 편치 않았습니다. 전 그를 이해합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의 인생의 모든 것이라 믿었던 아내가 지금은 그를 전혀 못 알아보고 있고, 여자 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로부터 아내를 빼앗으려 손톱을 내밀고 있으니 겁도 나고 화도 나고 집착도 심해지겠죠. 하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는 없어요. 자연스럽게 로맨스로 연결되어야죠.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 전환이 거의 없다시피합니다. 영화 대부분이 아내를 잃을지도 모르는 남자의 공포와 집착에 할애하고 있지요. 그 때문에 페이지에 대한 리오의 행동은 종종 지나치게 강압적이고 일방적입니다.

페이지도 몰입하기 쉽지 않는 인물입니다. 기억을 잃기 전의 전반부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영화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억을 잃은 페이지는 기억을 잃기 전의 페이지와 대비되어 매력이나 멋이 떨어집니다. 그리고 이 인물이 다시 발동이 걸리는 건 영화 후반부에 가서거든요. 더 괴상한 건 그 복귀 과정이 남편과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 이제 문제가 뭔지 아시겠죠. 남편도 나름 절실한 이야기를 하고 있고, 아내 역시 뭔가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정작 이들이 만족스러운 연애 이야기로 합쳐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 영화의 요소들은 로맨스를 버리고 두 이야기를 따로 떼어내 하나만 선택할 때에야 온전하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존재 이유는 발렌타인 데이 연애 영화이니, 뭔가 잘못된 겁니다.

전 레이첼 맥애덤스를 좋아하니까, 이 사람이 연기하는 캐릭터가 뭐건 그냥 우쭈쭈하면서 좋아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페이지는 맥애덤스의 매력이 최대한으로 발휘될 수 있는 캐릭터는 아닙니다. 단조롭고 심심한 부분이 너무 많아요. 전 채닝 테이텀에도 별 유감은 없는데, 요새 들어 그의 근육질 몸과 억센 얼굴이 연기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얼굴과 몸이 표정을 지으려 노력하고 있긴 한데, 그게 근육에 묻혀서 하나도 안 보인단 말이죠. 그걸 캐릭터로 봐주는 것도 한두번이죠. (12/03/08)

★★

기타등등
카펜터 부부 이야기는 괴상하긴 한데, 유일하지는 않습니다. 전에 이 사람들 이야기를 검색하다가 비슷한 이야기를 하나 이상 발견한 적 있어요. 그 중 하나는 여자 쪽이 조금 유명한 편이었는데... 다시 자료를 찾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습니다.


감독: Michael Sucsy, 출연: Rachel McAdams, Channing Tatum, Jessica Lange, Sam Neill, Jessica McNamee, Wendy Crewson, Tatiana Maslany, Lucas Bryant, Scott Speedman

IMDb http://www.imdb.com/title/tt1606389/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84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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