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 (2016)

2016.07.14 13:08

DJUNA 조회 수:22355


아무도 좀비가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는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연상호의 [부산행]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들어보면 무슨 바이오 기업인가에서 뭔가가 터져 나왔다고 해요.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가 전편인 [서울역]에 나올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그 디테일을 굳이 알고 싶어하는 관객들이 있을까요. 하여간 그 때문에 대한민국 전체에 좀비병이 돌았고 이제 유일한 희망은 어쩌다 초기진압에 성공했다는 부산뿐입니다.

이 영화가 특화하고 있는 것은 배경입니다. 영화의 액션 대부분이 서울역에서 부산으로 가는 KTX 열차와 중간중간에 서는 역에서 일어나요. 서울에서 좀비들이 창궐하기 직전에 떠난 열차에 감염자인 소녀 한 명이 탔고 그 때문에 열차는 좀비들과 생존자들이 부글거리는 동안 부산을 향해 질주합니다.

혹시나 해서 좀비와 열차를 키워드로 해서 구글링을 해봤습니다. 의외로 이 소재의 영화가 없더군요.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에 있을 수도 있겠지만 자랑스럽게 내세워도 될만한 아이디어입니다. 그리고 이 아이디어를 가져온 것만으로도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아요. 설정 자체가 수많은 질문을 만들어내죠. 좀비들과 생존자들을 어떻게 격리시킬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열차가 역에 도착하면 무슨 일이 발생할 것인가. 이런 상황에서 생존자들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이에 대해 답변만 충실하게 해도 재미있는 영화가 나옵니다. 연상호가 낸 답이 모두 100 퍼센트 믿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꼭 그럴 필요도 없죠.

영화는 굉장히 한국적인 악몽이기도 합니다. 원래 좀비란 게 메타포의 덫이잖아요. 그리고 연상호가 이 열차에 설치한 덫에는 한국인들만 걸립니다. 처음에 뉴스에서 좀비들은 '시위대'라고 나오죠. 중간에 선 대전역에서 달려나오는 군복입은 좀비들의 이미지는 또 다른 식으로 읽힐 수 있고요. 월드컵 노래에 반응하는 좀비들은 또다른 익숙한 이미지와 연결되지요. 우리가 헬조센이라는... 아, 이렇게 말하면 너무 이야기가 손쉬워지겠군요.

끔찍하기 짝이 없는 상황을 그리고 있지만 연상호 영화 중에서는 비교적 수월하게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돼지의 왕]이나 [사이비]처럼 우리 내면의 지옥을 바라본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장르 관습이 관객들을 현실감으로부터 어느 정도 보호하고 있고 일단 인물들이 단순해요. 모두 문장 하나나 둘로 설명될 수 있는 스테레오타이프들이죠. 김의성의 캐릭터처럼 양복 입은 한국 중년 남자가 얼마나 추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인물들도 있긴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대놓고 악역이라 찌질하고 무력한 주인공들보다 구경하기 편하잖아요. 본격적인 액션이 시작되면 속도가 좋고 액션도 많아서 의외로 신납니다. 보기 힘든 신체 손상 장면도 적고요. 조금 더 손봤으면 하는 캐릭터들이 있고, 남자들의 자기 변명과 결말의 징징거림을 잘랐다면 더 좋았겠지만, [부산행]은 여전히 성취한 게 많은 창의적이고 재미있는 장르 영화입니다. (16/07/14)

★★★

기타등등
1.85:1 영화입니다. 열차 영화엔 이 비율이 어울리죠. 스크린 엑스 버전도 있는 모양입니다.


감독: 연상호, 배우: 공유, 정유미, 마동석, 안소희, 최우식, 김수안, 김의성, 다른 제목: Train to Busan

IMDb http://www.imdb.com/title/tt5700672/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30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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