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닉스 Phoenix (2014)

2016.03.16 20:31

DJUNA 조회 수:7972


크리스티안 펫졸트의 [피닉스]는 프랑스 작가인 위베르 몽테이에의 소설 [Le démon est mauvais joueur]를 각색한 작품입니다. 영화를 보고 호기심이 생겨서 검색을 했는데, 이 작품은 1965년에 J. 리 톰슨 감독, 잉그리드 튤린, 막시밀리안 셸 주연의 [Return from the Ashes]라는 영국 영화로 이미 만들어진 적이 있더군요. 위키에서 (아마도 원작에 보다 충실한 것으로 생각되는) 그 영화의 시놉시스를 읽어보았는데, 당시에 나온 많은 프랑스 추리소설이 그렇듯, 그렇게 말이 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행히도 펫졸트는 원작을 충실하게 옮기는 대신 핵심적인 아이디어만 가져와 최대한 단순하게 정리했어요.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의 장편 이야기를 날렵한 단편 이야기로 바꾸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넬리라는 아우슈비츠 생존자입니다. 전후에 훌륭한 성형외과 의사를 만나 얼굴 부상을 치료 받았지만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지는 못했지요. 전쟁이 끝나고 자신을 돌보아주었던 친구 레네가 둘의 이스라엘 이민을 준비하는 동안, 넬리는 아직도 살아있을지 모르는 남편 조니를 찾아 밤길을 돌아다닙니다. 그러나 피닉스라는 클럽에서 결국 남편을 만나는데, 성형수술 때문에 넬리를 알아보지 못한 그는 어처구니 없는 제안을 합니다. 죽은 게 분명한 자기 아내 흉내를 내서 아내의 돈을 찾으면 그걸 나누자고요. 그리고 넬리는 그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히치콕이 떠오르실 겁니다. 정확히 말하면 [현기증]이 떠오르셨겠죠. [현기증]의 원작은 브왈로-나르스자크가 쓴 프랑스 소설이니, 이 두 작품의 가족유사성이 20세기 프랑스 멜로드라마의 특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해도 그렇게 잘못된 말은 아닐 것 같습니다. 펫졸트 자신은 영화를 만들면서 프레스턴 스터지스의 [레이디 이브]를 더 많이 참고했다고 하는데, 역시 그럴싸합니다. 조니는 [레이디 이브]의 찰스만큼이나 한심한 놈이죠. 이 영화에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스릴러와 코미디의 장치들이 있습니다. 설정만 따진다면 아슬아슬하거나 웃기지만 영화를 보면서 굳이 그런 반응을 보일 생각은 들지 않아요.

이 과격한 멜로드라마적 설정은 전후 독일 사회와 생존자들에 대한 독특한 코멘트입니다. 가장 눈에 뜨이는 건 피해자와 방관자의 비대칭적인 관계죠. 넬리는 남편 생각을 하면서 그 끔찍한 시간을 버텼지만 조니는 아내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돈이나 챙길 생각을 하고 있으며 심지어 아내를 밀고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험한 시기였으니 이해못할 이유도 없지만 (넬리는 가능한 한 최대한 이해심을 발휘합니다) 결국 잘못은 잘못이고 죽은 자들과 고통받은 자들에 대한 죄책감과 부끄러움은 당연히 그들 몫이죠. 그리고 영화는 거의 완벽한 결말을 통해 그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굉장히 오페라스러운 작품이죠. 소프라노, 메조, 테너 세 명에게 역할이 집중된 체임버 오페라를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소프라노인 넬리의 역할인데, 니나 호스처럼 이 역할에 최적화된 배우는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니나 호스는 지금까지 꾸준히 펫졸트의 영화에 출연해오며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는데, 이 영화에서는 정말 배우와 캐릭터, 영화가 완벽하게 딱 하고 맞아 떨어졌어요. (16/03/16)

★★★★

기타등등
음악이 많이 나오는 영화는 아닌데, 쿠르트 바일의 [Speak Low]가 인상적으로 쓰입니다.


감독: Christian Petzold, 배우: Nina Hoss, Ronald Zehrfeld, Nina Kunzendorf, Trystan Pütter, Michael Maertens, Imogen Kogge

IMDb http://www.imdb.com/title/tt2764784/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29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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