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아메리카의 기원과 능력은 요새 나오는 다른 만화책 수퍼영웅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는 특수 치료를 받고 보통 사람의 몇 배 능력을 갖게 된 군인으로, 미국 국기에서 디자인을 빌린 오색찬란한 유니폼을 입고 나치와 싸웁니다.


암만 찾아봐도 쿨한 구석이 없다고요? 맞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영화 [퍼스트 어벤져]에서 그건 장점입니다. 영화는 작정하고 요새 수퍼영웅 이야기의 경향을 거슬러 반대로 가요. 그러다 보니 최근에 조금씩 지겨워진 반복이 사라지고 심지어 신선하게 느껴지기까지 하죠.


캡틴 아메리카가 되는 스티브 로저스는 요새 보기 드문 레트로 전쟁영웅입니다. 수퍼 솔저가 되기 전까지 브루클린 출신의 병약한 청년이었던 그는 근육 빵빵 새 몸을 가진 뒤에도 여전히 그 말라깽이 청년의 정신을 머릿속 어딘가에 담고 있습니다. 보다 보면 그 주인공이 성조기를 뒤집어 쓴 만화 주인공이라는 걸 잊게 됩니다. 그는 수퍼 영웅 만화책보다는 40년대 전쟁 멜로드라마에 더 어울리는 사람이지요.


[퍼스트 어벤져]는 고풍스러운 제2차 세계대전 영화이기도 합니다. 별다른 냉소나 의심없이 당시 '세계를 구하기 위해' 전쟁에 뛰어들었던 사람들의 활약과 희생을 진지하게 그리는 영화죠. 당시의 시대묘사도 충실하고 멜로드라마도 잔뜩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고 영화가 애국주의를 강요하거나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영화 내에서 캡틴 아메리카라는 이름은 그리 자주 언급되지 않고, 로저스 자신도 그렇게 불리는 걸 꺼려 하는 거 같아요. 로저스가 이끄는 무리도 그가 구출한 전쟁 포로들로 구성된 다국적 군대고요. 특별한 정치적 입장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라 그냥 해외 흥행을 고려한 선택일 겁니다. 하지만 결과는 재미있어요. 특히 이런 접근법이 캡틴 아메리카라는 노골적인 전쟁 홍보 이미지의 천박함에 어색해하면서도 진짜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어하는 주인공의 소박한 심정을 그릴 때는요.


이렇게 제가 말한다고 해서 정말 진지한 전쟁영화를 기대하지는 않으시겠죠. 맞습니다. 나치들이 나오기는 하는데, 이 세계의 악당 레드 스컬은 진짜 진지한 나치는 아니죠. 히틀러까지 치고 세계를 정복하려는 야심을 가진 만화 악당입니다. 그는 온갖 종류의 신무기들로 로저스와 맞서는데, 이 복고풍의 가제트들은 정말 향수가 돋을 정도입니다. 단지 가지고 있는 장난감들에 비해 하는 짓이 조금 약한 건 유감이더군요. 대단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영화는 아닙니다.


여전히 [어벤져스] 떡밥이 나옵니다. 전 하워드 스타크의 등장이나 박람회 장면 같은 건 괜찮았습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와 연결되니까요. 레드 스컬이 힘의 원천으로 삼는 큐브야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였고. 하지만 현대 장면들은 없애거나 맨 뒤에 쿠키로 밀어넣는 게 나았을 것 같더군요. 이렇게 현대 장면들을 끼워넣으니까 이야기의 순수성이 날아가버리고 괜히 성급해보이잖아요. (11/07/26)


★★★


기타등등

1. 제가 처음 본 [캡틴 아메리카] 영화는 이거였죠.


2. 전 캡틴 아메리카가 되기 전의 스티브 로저스가 더 좋더군요. 새 몸을 얻은 뒤로는 아쉽더라고요. 일단 크리스 에반스의 가슴 근육이 심하게 부담스러웠고... 원래 핸디캡이 있는 캐릭터들은 그 핸디캡 자체가 캐릭터의 일부로 느껴지지 않습니까?

 

감독: Joe Johnston, 출연: Chris Evans, Hayley Atwell, Sebastian Stan, Tommy Lee Jones, Hugo Weaving, Dominic Cooper, Toby Jones, Stanley Tucci, Samuel L. Jackson 


IMDb http://www.imdb.com/title/tt0458339/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6348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