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들의 밤 The Night Of The Generals (1967)

2015.08.15 18:27

DJUNA 조회 수:3236


오마르 샤리프의 부고를 접했을 때 제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영화는 [아라비아의 로렌스]도 [닥터 지바고]도 아닌 바로 이 [장군들의 밤]이었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어요. 대표작은 당연히 아니고 그렇다고 그의 캐릭터가 유별나게 튀지도 아니죠. 아니 많이 괴상하긴 해요. 이집트 배우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장교를 연기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이 영화가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모르겠어요. 그냥 좀 별난 영화입니다.

그 뒤로 계속 머리를 찌르길래 결국 오늘 영화를 다시 한 번 봤습니다. 역시 기억했던대로 좀 별난 영화였어요. 아주 이상하지는 않고 그냥 좀 별납니다.

추리물로 시작하는 영화입니다. 1942년, 독일군에게 점령된 바르샤바에서 어느 매춘부가 무참하게 살해당해요. 피살자가 독일측 첩자이기도 했기 때문에 사건은 아프베어의 그라우 소령에게 넘어갑니다. 목격자에 따르면 범인은 독일군 장군 제복을 입고 있었고 당시 알리바이가 없는 독일군 장군은 세 명입니다. 여기서 관객들이 범인이 누군지 알아맞히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캐스팅 논리를 보면 답이 나와요. 피터 오툴, 도널드 플레젠스, 찰스 그레이 중 누가 범인이겠습니까. 하지만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기도 전에 그라우는 파리로 보내지죠. 2년 뒤인 1944년, 세 장군은 모두 파리에 모이고 다시 살인사건이 벌어집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무대로 한 추리물이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지요. 그 추리물의 탐정이 아프베어 소속 장교일 수도 있는 것이고요. 하지만 그라우의 수사는 우선순위 면에서 조금 괴상하면서도 매력적인 구석이 있습니다. 장군들 중 한 명이 살인범이라지만 그들의 직업은 원래 사람을 죽이는 것이고 모두 세계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전쟁을 치르면서 무차별 대량학살을 벌이고 있지요. 하지만 그라우는 그런 와중에서도 살인사건의 범인은 반드시 체포되어 법의 심판을 받아야한다고 믿습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이 속해 있는 독일군의 승패 따위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건 완벽한 정의의 실현이죠.

이러면 재미있는 스릴러가 나올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영화는 스케일을 훨씬 크게 잡습니다. 특히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의 비중은 비정상적일 정도로 크죠. 용의자 중 한 명인 탄츠의 운전사가 된 하르트만의 캐릭터도 기능에 비해 지나치게 많이 나오고요. 그러니 주인공 탐정이어야 할 그라우는 조연 비중으로 줄어들고 그의 수사 과정 묘사도 위축됩니다. 그냥 모두 거대한 사건 속에 휘말리는 작은 사람이 되어버려요. 저에게 이 영화가 별난 인상을 주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어요. 왜 이렇게 딴 이야기만 계속 하는 건가요. 살인사건에 관심은 있나요?

영화의 원작은 한스 헬무트 키르스트라는 독일 작가의 동명 소설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도입부를 제외하면 닮은 구석이 없다고 합니다. 전혀 다른 내용의 원작을 할리우드 배우들이 나오는 나치 페티시 영화의 재료로 삼기 위해 끼워맞춘 결과 이렇게 산만한 영화가 만들어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연쇄살인마와 나치 전쟁광의 심리를 연결시킨 건 여전히 재미있는 아이디어이고 이 산만함이 만들어내는 의도치 않은 거대함이 그 어떤 별난 매력을 주는 것도 사실입니다. 꼭 완성도와 연결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기억에 남는 별난 매력요. (15/08/15)

★★☆

기타등등
폴란드 장면을 진짜 폴란드에서 찍은 몇 안 되는 냉전시대 서구 영화입니다.


감독: Anatole Litvak, 배우: Peter O'Toole, Omar Sharif, Tom Courtenay, Donald Pleasence, Joanna Pettet, Philippe Noiret, 다른 제목: 바르샤바의 밤

IMDb http://www.imdb.com/title/tt0062038/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4750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