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비게이션 (2014)

2014.07.04 16:24

DJUNA 조회 수:6301


장권호의 [내비게이션]의 원작은 네이버 문학에 소개된 전민우의 단편 [안전운전 하십시오]. 자동차 내비게이션 괴담을 소재로 한 단편으로 깔끔하고 재미있습니다. 세 명의 이공계열 남자 대학생들이 선배 차를 몰래 빌려타고 놀러가다가 교통사고 현장에서 내비게이션 기기를 주운 뒤로 공포스러운 일을 겪는다는 이야기죠.

장권호는 이 이야기를 파운드 푸티지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이야기에 잘 맞을 거 같아서 이 형식을 택한 게 아니라 제작 여건상 파운드 푸티지 영화가 맞을 거 같아서 이 형식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찾다가 전민우의 단편을 만났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주인공 대학생들은 여자 한 명을 포함한 영화 동아리 회원들로 바뀌었습니다. 주인공 중 한 명이 새로 산 카메라로 다큐멘터리를 찍는다는 핑계로 시작되는 영화지만 종종 마주치는 CCTV, 자동차의 블랙박스, 내비게이션의 카메라도 합세합니다. 감독이 생각하는 것만큼 새로운 시도는 아닙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크로니클]이 있으니까요. [파라노말 액티비티] 시리즈도 점점 카메라 수를 늘려가고 있고. [블레어 윗치]가 나온 게 몇 년 전인데요. 지금 기술로 할 수 있는 건 대부분 다 나왔죠.

그렇게 잘 만든 파운드 푸티지 영화가 아니라는 건 금방 드러납니다. 이 장르에서는 초반 10분이 중요하죠. 어차피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사실인 척하면서 분위기를 살려야 나머지의 황당함이 커버가 되니까요. 하지만 카메라를 들고 있는 학생이 나머지 두 명을 만나는 부분부터 세팅된 티가 역력해서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어색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각해져요. "넌 도대체 왜 거기에 카메라를 들고 가니?"라는 질문을 피할 수가 없는 겁니다. 이 장르가 원래 그러려니하고 대충 무시하며 보고 싶어도 우연히 대충 놓았다는 카메라가 주저앉아 큰일을 보고 있는 등장인물을 찍고 있는 장면에 이르면 질문을 안 하려 해도 안 할 수가 없어요.

이 장르와 관련된 또다른 질문인 "도대체 이걸 누가 편집한 거야?"라는 질문도 피할 수 없습니다. [라스트 엑소시즘]처럼 답이 안 나오지는 않아요. 이야기를 만들면 못할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는 정말로 정말로 어색하겠지요. 일단 저 상황에서 영상 정보를 어떻게 다 모은답니까? 게다가 몇몇 장면은 그냥 극영화 찍는 것처럼 연출된 티가 역력합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 중 한 명이 스피커로 음악을 틀자 그 배경으로 학생들이 까불며 춤추는 장면이 있습니다. 당연히 편집을 하면 음악이 끊어지겠죠? 하지만 그러는 동안 스피커의 음악은 은근슬쩍 '영화음악'으로 전환되고 그들의 대사도 들립니다. 이게 그냥 파운드 푸티지라면 불가능한 일이죠. 초반부의 로맨틱 코미디 분위기를 풍기는 편집 역시 이 영화가 파운드 푸티지를 편집한 것이라면 괴상하고 잔인합니다. 척 봐도 아직 그들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는, 카메라를 든 학생의 감정을 그대로 흉내내 투영하고 있으니까요.

잘 알려진 배우인 황보라를 캐스팅했으니 파운드 푸티지 장르를 너무 엄격하게 밀어붙이지 않기로 했다고 치죠. 하지만 그래도 문제는 여전히 남습니다.

가장 큰 문제점은 페이스입니다. 본격적인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러닝타임의 절반을 날려야해요. 러닝타임 82분의 짧은 영화지만 앞의 40여분은 그렇게 짧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파운드 푸티지의 설정을 어색하게 살리느라 별다른 이야기 발전 없이 시간을 날려버리기 때문이죠.

하지만 본격적인 호러로 전환되는 후반부가 더 심각합니다. 가장 큰 문제점은 감독이 자기 아이디어를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는 보도자료에서 유클리드와 리만을 들먹이며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반복되는 현재에 갇힌' 사람들을 그리려했다고 하면서 이걸 '새로운 방식의 스토리텔링'의 실험이라고 주장하더군요. 하지만 호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영역은 이미 데이빗 린치에서부터 나카타 히데오에 이르는 수많은 장인들과 거장들이 오래 전에 지나간 곳입니다. 뭔가 새로운 걸 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막 나가면 안 돼요. 선배들이 이미 닦아 놓은 길을 겸손하게 따르며 그들이 놓친 곳이 있나 주의를 기울이며 찾아야죠. 그러지 않으면 이 영화에서 장권호가 그랬던 것처럼 원작의 간결한 스토리에 별로 새롭지도 않은 재료들을 덕지덕지 붙이다가 결국 배우, 감독, 관객들이 짜증만 잔뜩 내고 끝난단 말입니다. (14/07/04)

★☆

기타등등
원작은 네이버 문학에서 내려왔지만 전자책으로 구입할 수 있습니다.


감독: 장권호, 출연: 황보라, 탁트인, 김준호, 다른 제목: Navig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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