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 박사와 구피 씨 Motor Mania (1950)

2015.04.19 23:06

DJUNA 조회 수:2393


미키 마우스의 친구들 중 구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가장 어른이 된 캐릭터입니다. 나이를 먹어 더 현명해졌다거나 더 성숙해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지만 여전히 독신으로 남아 만화 속 모험을 하는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그는 어느 순간부터 직장이 있고 아이도 있는 보통 중산층 미국 남자의 역할을 떠 맡기 시작했습니다.

사연이 좀 깁니다. 구피의 목소리를 담당했던 성우는 핀토 콜빅이었는데 이 사람이 1939년에 디즈니 스튜디오를 떠났습니다. 순식간에 캐릭터의 목소리가 사라진 거죠. 이 때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하는 법] 시리즈였습니다. [야구하는 법], [골프 치는 법], [스키 타는 법], [낚시하는 법]... 당시 교육 영화의 형식을 흉내 낸 이 단편들에서 구피가 맡은 건 어설프게 내레이터의 지시를 따라하다 망가지는 슬랩스틱 코미디였습니다. 대사의 비중이 팍 줄어든 거죠. 가끔 짧은 대사가 들어갈 때면 핀토 콜빅이 녹음한 대사를 재활용하거나 다른 성우를 데려와 콜빅의 목소리를 흉내내게 했지요.

이러다 보니 독립적인 단편에서 구피의 이미지는 미키나 도널드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이런 교육영화의 형식에서 주인공은 당연히 교육 대상인 평범한 미국 남자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콜빅이 44년에 돌아왔을 때는 이 새로운 캐릭터와 역할이 완전히 자리를 잡은 뒤였습니다. 게다가 월트 디즈니 자신이 구피를 '보통 미국 남자' 캐릭터로 활용하라는 지시를 내렸죠. 여기서부터 그는 심지어 구피라는 이름도 버립니다. 이제 구피는 캐릭터가 아니라 이런 '보통 미국 남자'를 연기하는 개 얼굴의 배우에 가까웠습니다. 당시 구피가 자주 연기한 캐릭터 이름은 조지 기프였죠. 심지어 외모도 조금 바뀌었는데 저에게 가장 신경 쓰이는 건 이 시기 영화 중 상당수가 그의 늘어진 귀를 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950년작 [지킬 박사와 구피 씨]는 귀가 없는 구피가 처음 등장하는 영화입니다. 여기서 그는 워커라는 평범한 직장인을 '연기'해요. 예의바르고 상냥한 그는 일단 차에 오르면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에서처럼 난폭한 미치광이인 윌러로 변신합니다. 그러다 차를 세워놓고 내리면 얌전한 워커로 돌아와 차를 몰고 다니는 난폭한 다른 윌러들의 공격을 받습니다.

공익 캠페인 영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전의 [...하는 법] 시리즈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영화가 그냥 웃자고 하는 농담이 아니란 것이죠. [골프 치는 법]은 실제 골프를 치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러는 척하면서 구피를 다양한 곤경에 빠트리고 재미있어할 뿐이죠. 하지만 [지킬 박사와 구피 씨]의 워커와 윌러는 실제로 존재하는 현상입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운전대를 잡으면 성격과 태도가 바뀌고 이건 실생활에서 진짜로 위험합니다. 영화가 구피를 빌어 이 현상을 기가 막히게 과장하긴 했지만 없는 이야기를 지어낸 건 아니죠.

[지킬 박사와 구피 씨]는 훌륭한 코미디 시리즈가 자신의 매력과 개성을 전혀 잃지 않고서도 공익 캠페인 영화로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하긴 디즈니는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이와 관련된 충분한 경험을 쌓았었지요. (15/04/19)

★★★☆

기타등등
이 영화에도 기프라는 이름은 등장합니다. 워커의 이웃 이름이에요.


감독: Jack Kinney, 배우: Pinto Colvig, John McLeish, 다른 제목: 모토 마니아

IMDb http://www.imdb.com/title/tt0042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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