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맥도나의 [쓰리 빌보드]는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의 가장 유력한 후보 중 하나였지요. 골든 글로브, 영국 아카데미 상의 작품상을 휩쓸다가 막판에 걸려넘어져 기예르모 델 토로의 [셰이프 오브 워터]에 밀려났지만요.

이야기의 여는 설정의 아이디어는 잘 만든 광고처럼 선명해요. 강간살인범에게 딸을 잃은 엄마 밀드레드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마을 외곽의 대형 광고판 세 개를 사서 경찰을, 그러니까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경찰서장 윌로비의 무능력함과 무책임함을 비난하는 광고를 겁니다. 딸을 잃은 엄마라면 할 법한 일이죠.

보통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열리면 경찰이 재수사에 들어가거나 그래서 범인이 잡히는 과정이 그려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쓰리 빌보드]는 그런 영화가 아니에요. 일단 그 동네 경찰이 밀드레드가 생각한 것처럼 일을 안 한 건 아니거든요. 좀 한심한 사람들이 많은 건 사실인데, 범인을 잡을만한 증거도 없고 단서도 없어요. 밀드레드의 요구 상당수는 억지고요. 게다가 밀드레드에게 욕을 먹고 있는 윌로비는 췌장암을 앓고 있어서 살 날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당연히 밀드레드의 편을 드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범죄의 진상을 밝히는 대신 밀드레드의 광고판을 둘러싼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미국 남부 백인 노동자 계급 사람들이 내면을 파헤칩니다. 밀드레드를 포함한 이들 모두는 인종차별, 성차별, 호모포비아 등등을 품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안주하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극복하려고도 하고. 그 사이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이 영역에서 이성은 잘 통하지 않고 운은 안 좋고 그 사이에서 사람들은 종종 어처구니 없는 일을 저지르고.

괜찮은 이야기 소재이고 영화도 사실 꽤 재미있습니다. 일단 캐릭터들을 잘 잡았어요. 그 중에서도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연기하는 밀드레드는 압도적이죠. 그냥 정의를 원하는 울분에 찬 여성으로 그려질 가능성이 있는 인물인데, 나온 결과물은 안 그렇죠. 훨씬 입체적이고 예측불가능하고 정신없어요. 이들을 갖고 만들어낸 이야기도 늘 재미있는 방향으로 튀고요. 그리고 의외로 코미디가 세요. 마틴 맥도나의 영화이니 이건 당연한 것이겠지만.

단지 영화가 좀 얇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이슈들이 재미있는 각도에서 보여지고 있기는 한데, 이게 좀 공식적이고 아주 깊이 나가지는 못합니다. 어느 깊이까지가면 계속 파는 대신 그 자리를 뱅뱅 돌아요. 결말은 그냥 결말을 위한 결말이라 좀 공허하다는 생각도 들고. 모 캐릭터의 참회 과정은 좋은 드라마지만 그만큼 변명처럼 보이고요. 영국 작가/감독의 미국 이야기라는 한계 때문일 수도 있지 않나, 뭐, 그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18/03/05)

★★★

기타등등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밀드레드 캐릭터를 만들 때 존 웨인을 모델로 삼았다고요.


감독: Martin McDonagh, 배우: Frances McDormand, Woody Harrelson, Sam Rockwell, Caleb Landry Jones, Abbie Cornish, Zeljko Ivanek, Lucas Hedges

IMDb http://www.imdb.com/title/tt5027774/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58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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