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도감 (2017)

2018.08.15 23:23

DJUNA 조회 수:5836


중학교 1학년인 경언은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지금까지 한 번도 얼굴을 본 적 없는 삼촌 재민을 만납니다. 얼떨결에 경언의 후견인이 된 재민은 경언이 받은 보험금을 몽땅 잃고 달아납니다. 경언은 재민을 추적해 찾아내지만 돈은 이미 날아갔고 집주인은 전세금을 올려달라네요. 어쩔 수 없이 경언은 재민의 공범이 되어 동네 약사 점희를 상대로 사기극을 벌이게 됩니다.

김인선의 [어른도감]은 조숙하고 어른스러운 여자 중학생과 철없고 대책없는 남자 어른의 이야기입니다. 김인선은 1년 간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이 이야기를 짰다고 해요. 이런 이야기에서 어른스럽고 조숙한 중학생은 어른들의 판타지인 경우가 많지만, 1년 정도 학교에서 아이들과 상대하다보면 과연 내가 충분히 어른이긴 한가?라는 질문을 던질만도 하죠.

[페이퍼 문]과 음... 조금은 [아가씨]를 섞어놓은 것 같은 영화입니다. 약국 주인 점희를 유혹해 돈을 갈취하려 하려는 재민은 경언을 딸이라고 속여 바람잡이로 이용하려 하죠. 단지 [아가씨]와 같은 반전, 폭력, 섹스 같은 건 없습니다. 당연하지만.

[아가씨]의 백작과는 달리 재민은 그렇게 대놓고 악당은 아닙니다. 사실 악당인 건 맞는데 마음이 약하고 사람이 모질지 못한 데다가 무엇보다 무능력하고 운이 없죠. 이 계획부터가 어설프잖아요. 왜 굳이 딸이라고 속이냐고요. 그냥 아버지를 잃은 조카인데 자기가 키우는 중이라고 말하면 효과가 더 클 텐데. 한마디로 비교적 안전해서 가볍게 비웃으며 편하게 구경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물론 제가 작가였다면 이 캐릭터에게 훨씬 모질게 굴었겠지만.

단순하고 노골적인 재민과는 달리 경언은 보다 섬세한 터치로 그려집니다. 아이는 처음엔 씩씩하고 자기 앞가림을 잘하는 것처럼 보여서 그렇게까지 걱정이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봤자 중학생이고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잖아요. 아이의 단단한 외면은 어떻게 보면 정말 그 나이 또래 아이스러운 위장일 뿐이고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경언의 보다 아이스러운 내면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의 묘사는 경언이 재민과 점희와 맺는 관계를 통해 아주 자연스럽게 그려집니다.

단순하고 명쾌하고 우아하며 정확한 영화입니다. 영화는 아주 새롭거나 극단적인 무언가를 추구하지 않아요. 하지만 아름답게 연주된 스카를라티의 소나타처럼 모든 게 다 자기 자리에 있습니다. 쓸데없는 장면도 없고 감정과잉이나 냉소도 없습니다. 그리고 근사하게 합이 맞는 세 배우가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지 않은 좋은 연기로 러닝타임을 꽉 채우고 있죠. (18/08/15)

★★★☆

기타등등
감독의 전작 [수요기도회]의 주연인 김새벽이 카메오로 나옵니다. 다른 주연이었던 서정연은 세 주연 중 하나인 점희역이고요.


감독: 김인선, 배우: 이재인, 엄태구, 서정연, 김새벽, 김희창, 황정민, 박성연, 다른 제목: Adulthood

IMDb https://www.imdb.com/title/tt7391442/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74305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