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2012)

2012.04.17 00:13

DJUNA 조회 수:14779


[코리아]의 소재는 1991년 3월 일본 지바 현에서 열린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남북 첫 탁구단일팀은 당시 9연패를 노리던 중국을 누르고 금메달을 땄었죠. 감동적인 순간이었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합니다. 이 정도면 드라마의 소재로 충분하지 않겠어요. 반목하던 두 무리의 사람들이 갑자기 한 팀이 되어 동포애로 끓다가 금메달까지 땄다잖아요.

냉소적으로 들리나요. 그런 의도인 거 맞습니다. 소재가 된 사건 자체에 대해서는 전혀 냉소적이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하지만 이 이야기가 소위 한국식 스포츠 신파 영화의 제물이 되는 경우는 사정이 다릅니다. 그리고 영화는 이 장르의 함정에 그대로 빠져요. 불필요한 코미디가 이야기의 맥을 끊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멜로드라마로 영화 전체가 질퍽합니다. 대사 감각은 나쁘고 이야기 구조도 불안해서, '왜 우리나라에서 스포츠 영화는 꼭 이런 식으로만 만들어져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가장 불편한 건 이 영화의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적인 성향이 지극히 폐쇄적으로만 표현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 영화에서 '코리아'팀의 주적은 9연패를 노리던 중국팀인데, 영화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 중국 스타 선수를 오만방자하고 재수없는 소악당처럼 그립니다. 역시 자기 나라 국기를 달고 경기하러 나온 상대편은 이 순간부터 정정당당하게 싸워 이겨야 하는 선수가 아니라 일종의 '악'이 되는 거죠. 전 스포츠 영화에서 이러는 걸 보면 어리둥절하게 됩니다. 이렇게 만들면 기분이 좋습니까?

영화 자체보다 배우가 훨씬 좋은 작품입니다. 물론 이 영화를 대표하는 것은 현정화를 연기한 하지원입니다. [코리아]라는 영화 자체가 '하지원 신파'에요. 이 배우의 전작들을 보신 분들은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아실 겁니다. 하지원이 지난 몇 년 동안 꾸준히 해왔고 관객들도 기대하고 있는 바로 그런 영화지요. 그리고 우린 영화보기 전에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던 바로 그런 하지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하지원을 포함한 남한 쪽 배우들은 모두 손해를 봅니다. 역시 '하지원 신파'의 장르적 속성 때문이죠. 그런데 이 억지로 쥐어짜는 코미디와 신파, 나쁜 대사들은 모두 남한 캐릭터들에게만 주어져 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연기해도 계속 발이 걸리고 밟히는 상황인 겁니다. 그 '열심히 하는' 연기가 영화에 나쁜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요.

북한 측 배우들에게는 그런 핸디캡이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코미디도 없고 단순 명쾌한 캐릭터와 상황에 집중하기만 하면 돼요. 그리고 이 영화에서 리분희로 나온 배두나는 그냥 멋집니다. 터프하고 쿨하고 카리스마 넘치는데, 안에는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연약함과 상처를 숨기고 있어요. 이 정도면 거의 순정만화 수준이잖습니까. 캐릭터로서 가장 좋았던 건 한예리가 연기하는 유순복입니다. 현정화와 리분희가 스타라면, 국제 대회에 처음으로 출전한 유순복은 자신감도 없고 심리적 압박감도 상당합니다. 진짜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거죠.

남한 측이 반쯤 접고 가는 영화지만 그래도 앙상블은 좋은 편입니다. 물론 여전히 오글거리거나 매력없는 캐릭터들이 판을 칩니다. (특히 전 오정세가 연기하는 '분위기 메이커' 오두만의 캐릭터를 견딜 수가 없더군요.) 하지만 하지원, 배두나, 한예리의 앙상블은 좋습니다. 모두 각각 다른 스타일의 연기를 하고 있는데도 예상 외로 호흡이 잘 맞고 그림도 잘 나와요. 특히 하지원과 배두나가 같이 있을 때는 거의 알렉스 목소리가 환청으로 들릴 정도.

[코리아]는 소재와 가지고 있는 배우들만 봐도 훨씬 좋은 영화가 될 수 있었던 작품입니다. 하지만 이 장르에 대한 충무로의 편견과 게으른 안전주의를 고려해보면, 그 '좋은 영화'는 그냥 환상일 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배우들이 열심히 자기 역할을 하긴 하지만, 영화가 좋다는 생각은 안 들고 그냥 배우들만 보게 되는 영화예요. (12/04/17) 

★★☆

기타등등
[코리아]라는 제목은 막연하고 무의미하게 들리지만, 생각보다는 구체적입니다. 남북한이  단일팀으로 국제경기에 출전할 때 국호를 그냥 Korea라고 하니까요. 그냥 나라 이름이 아니라 특별한 상황의 국호인 거죠. 그러나 이걸 꼼꼼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몇이나 되겠어요. 전  여전히 나쁘고 무책임한 제목 같습니다. 검색도 힘들고요.


감독: 문현성, 출연: 하지원, 배두나, 한예리, 최윤영, 박철민, 김응수, 오정세, 이종석,  다른 제목: Korea, As One

IMDb http://www.imdb.com/title/tt2328503/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81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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