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전야 (2010)

2010.04.03 22:15

DJUNA 조회 수:12998


천재요리사 수인은 아내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감옥 안에서 그는 애인을 살해했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들어온 마술사 상병을 만나요. 탈옥을 감행하려는 수인에게 상병은 제주도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미아라는 여자의 안부를 전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용케 탈옥에 성공한 수인은 제주도로 내려가고 미아의 레스토랑에서 주방장이 됩니다.


[폭풍전야]는 기성품 멜로드라마 재료들로만 구성된 영화입니다. 금지된 사랑, 불륜, 불치병, 탈옥, 누명 쓴 남자와 같은 소재들이 뻔뻔스럽게 노출되어 있지요. 제가 줄거리를 보다 자세히 읊는다면 여러분은 이 영화가 요란한 소몰이 주제가가 뒤에 깔리는 용맹한 통속극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폭풍전야]가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은 그와는 다릅니다. 여전히 통속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걸 동아시아 아트하우스 풍으로 풀고 있지요. 영화는 이야기가 아무리 극단적인 신파로 흘러도 시치미 뚝 떼고 무덤덤함을 고수하고 있어요. 주인공이 운명의 잔인한 장난 때문에 몸부림쳐도 롱 샷으로 잡은 아름다운 제주도 풍광이 더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게다가 영화는 이런 상황에서 유머를 꽤 많이 넣고 있어요. 두 주인공들은 자신들 앞에 닥친 운명 앞에서 한 없이 진지하지만 그들이 스타일을 구기지 않고 러닝타임을 돌파하는 길은 거의 없습니다. 어디까지가 의도인지 모르겠지요.


영화에서 가장 집중하고 있는 트릭은 소위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것입니다. 상병은 마술사이고 미아 역시 상병에게서 마술을 배웠어요. 영화는 마술이라는 핑계를 대고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기적들을 시치미 뚝 떼고 풀어놓습니다. 그 때문에 영화의 도피적 성격이 더 강해지기도 했지요. 그게 캐릭터들과도 맞습니다. 두 주인공들은 세상과 맞설 생각이 없어요. 그냥 숨고 도망치고 사라지기를 바라죠.


[폭풍전야]는 황우슬혜와 김남길이 MBC 드라마와 버라이어티 쇼로 지명도를 쌓기 전에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그 때문에 이들을 통해 두 배우들의 얼굴을 먼저 익힌 관객들은 이 영화를 조금 다르게 볼 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들이 가진 배우로서의 개성 자체가 바뀐 건 아니니, 감상자로서 제가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김남길 베드신이 있다는 정보 하나만 가지고 극장을 찾는 사람들은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10/04/01)


★★★


기타등등

[폭풍전야]의 주인공 이름들은 모두 일반명사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보니까 뜻도 대충 맞아요. 우연이라는 생각은 안 듭니다. 


감독: 조창호, 출연: 김남길, 황우슬혜, 정윤민, 오혜석, 김재록, 윤제문, 김정민, 다른 제목: The Day Before, Lovers Van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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