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실의 표적 Body Double (1984)

2013.08.25 12:10

DJUNA 조회 수:11027


제가 가장 좋아하는 브라이언 드 팔마 영화로 [침실의 표적]을 뽑지는 않습니다. 실패작이기 때문에? 하긴 개봉 당시엔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드 팔마는 이 영화로 래지상 후보 지명까지 받았죠. 하지만 당시 관객이나 비평가들의 신경을 긁었던 대부분 요소들은 드 팔마가 의도적으로 자신의 예술적 통제하에 삽입했던 것들입니다. '실패작'으로 몰아붙이는 건 너무 쉽고 또 잘못되었죠. 전 그냥 이 영화에서 그의 의도를 좋아하기 어렵습니다.

드 팔마의 많은 영화들이 그렇듯 [침실의 표적]은 히치콕의 영화에서 따온 재료들로 만든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입니다. 뱀파이어 영화를 찍다가 폐소공포증으로 해고된 배우 제이크 스컬리는 바람 난 여자친구의 집에서도 쫓겨나 돈도 없고 갈 곳도 없는 신세가 됩니다. 그러다 매소드 액팅 클래스에서 만난 샘이라는 배우가 친구의 집이라며 언덕에 있는 호사스러운 현대식 건물에 잠시 머물게 해주는데, 그 건물에 보이는 집에는 밤마다 반 나체로 야시러운 춤을 추는 여자이웃 글로리아 레벨이 살고 있었더랬죠. 스컬리는 곧 글로리아에게 집착하게 되고 미행까지 하게 되는데, 여자 주변에는 검은 선글래스를 쓴 수상쩍은 남자가 뒤를 맴돌고 있습니다.

척 봐도 [이창]과 [현기증]이 떠오르지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도 있고 그밖의 다른 것들도 있을 겁니다. 드 팔마는 이런 영화들을 [침실의 표적] 이전에도 많이 만들었었죠. 단지 그는 이 영화에서 이전과 다른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가 변태적으로 스토킹하는 거장 히치콕의 재료들을 이전처럼 모아오긴 했는데, 이것들을 가지고 지독하게 천박한 영화를 만들었던 겁니다. 원래 계획은 완성된 영화보다 더 고약했대요. 멜라니 그리피스가 맡은 포르노 배우 홀리 바디 역에 실제 포르노 배우를 출연시키고 섹스신도 진짜로 찍을 생각이었답니다.

오로지 80년대에만 가능했던 영화의 천박함 때문에, 영화를 보고 있으면 몇몇 장면에선 정신이 몽롱해질 정도입니다. 특히 홀리 바디의 등장과 함께 성격이 확 바뀌는 후반부는요. 적어도 데보라 셸턴이 연기하는 글로리아 레벨이 여자주인공인 전반부에는 히치콕의 오리지널 영화들에서 볼 수 있었던 어떤 품격의 흔적이 있지요. 하지만 홀리 바디가 그 자리를 물려받는 순간 우아함이나 품격 따위는 저 밑으로 가라앉고 맙니다. [현기증]의 주디를 생각하시면 곤란해요. 홀리는 히치콕이 절대로 쓰지 않았을 캐릭터, 그러니까 오직 짜증과 비웃음만을 유발하는, 내면이 없는 바보입니다. 여기서부터 관객들은 확신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코미디잖아. 아까부터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던 건 나 때문이 아니었어.

그래놓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보니, 그 전에 나왔던 글로리아 레벨의 퇴장 장면도 마찬가지로 코미디였습니다. 살인도구로 심지어 전기 드릴이 등장하는 끔찍한 슬래셔 장면이고 전 그 순간 여자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한 상태라 도저히 웃을 수가 없지만 코미디예요. 히스테리컬하고 모든 게 과잉인 상황도 그렇지만 코미디가 아니라면 그 살인장면의 괴상하게 덜컹거리는 리듬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런 것들이 오로지 천박하게만 나오는 게 아니라 피노 도나지오의 달콤한 음악을 배경으로 깔고 브라이언 드 팔마 특유의 우아한 촬영과 편집 속에서 벌어지니까 혼란이 생깁니다. 지극히 80년대스러운 혼란일 수도 있겠군요. 아까 의견을 조금 접겠어요. 이 영화에서 괴상하게 웃기는 장면들 중 상당수는 80년대 당시엔 그렇게 웃기지 않았을 거예요. 적어도 당시 관객들은 영화 속 80년대 패션을 비웃으며 영화를 보지는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이 상황에서 굳이 코미디와 코미디가 아닌 것을 구별할 필요가 있을까요.

80년대 문화에 별다른 애착이 없고 이런 식의 상황 전개에 그렇게까지 정이 간다고 할 수 없는 저로서는 [침실의 표적]에 대단한 애정을 쏟을 생각은 없어요. 그런 건 일부러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단지 브라이언 드 팔마가 자신의 특정 취향을 끝까지 밀어붙였다는 면에서 중요한 작품이며,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그럴싸한 이유가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는 없지요. (13/08/25)

★★★

기타등등
멜라니 그리피스는 요새 일이 뜸하군요. 필모그래피를 봐도 눈에 뜨이는 작품이 없고. 참, 이 영화에선 갈비뼈가 보일 정도로 말랐어요. 이후 체중 관리 때문에 애먹던 시절이 전혀 생각나지 않을 정도.


감독: Brian De Palma, 배우: Craig Wasson, Melanie Griffith, Gregg Henry, Deborah Shelton, Guy Boyd, Dennis Franz

IMDb http://www.imdb.com/title/tt0086984/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3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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